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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타 데 호이] 노예의 후손, 국가의 영웅 이사벨리노 그라딘

풀네임: 이사벨리노 그라딘 포지션: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국적: 우루과이 출생일: 1897년 7월 8일 클럽 경력: 1915 - 1921 페냐롤 1922 - 1929 올림피아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1. 노예의 후손 그라딘의 증조부는 레소토왕국의 노예 출신이었으며 많은 이민자들이 우루과로 건너오던 18세기 후반에 그라딘의 증조부또한 우루과이로 건너와 생활했고 시간이 지나 1897년 7월 8일, 증손 이사벨리노 그라딘이 태어난다. 세계에 백인우월주의 사상이 너무나도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20세기 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라딘을 비롯한 흑인들에게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나 당시 우루과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국익을 위해 복지 정책을 펼치고 인종 간의 마찰도 최소한으로 하려 노력하는, 진보적이며..

[부트발 잡담]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선 미드필더 TOP 15

TOP 15풀네임: 호세 비센테 산체스 펠리프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 백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67년 10월 8일 클럽 경력: 1975 - 1976 바르셀로나 B 1976 - 1986 바르셀로나 1986 - 1988 무르시아 1988 - 1990 사바델 바르셀로나 통산 경기: 438경기1970년대 말~80년대 초에 전성기를 보낸 미드필더로 라이트백으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화려하거나 특출난 장점은 없었으나, 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와 꾸준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오랜 기간 바르셀로나의 선수로 활약하며 아래의 영광들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바르셀로나 경력이 끝나갈 즈음에 주장완장을 차기도 했다.TOP 14풀네임: 마르티 베르헤스 마사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국적..

부트발 잡담 2023.06.05

[부트발 잡담]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측면 수비수 TOP 10

TOP 10풀네임: 엘라디오 실베스트레 그라엘스포지션: 레프트 백국적: 스페인출생일: 1940년 11월 18일클럽 경력:1959 - 1962 콘달1959 - 1960 UE 레이다 (임대)1962 - 1972 바르셀로나1972 - 1974 헤라클레스1974 - 1976 김나스틱바르셀로나 통산 경기: 452경기바르셀로나 커리어 극 초반에는 동 포지션의 지그프리드 가르시아가 너무 굳건했던 나머지 적은 기회를 받았으며 상황에 따라 라이트 백도 소화했다. 1963-64 시즌, 23살에 31살의 가르시아를 밀어내게 되고 친코 코파스 시대 이후 팀에서 부동의 좌측 수비가 되어 코파 델 레이 우승 3회, 인터시티 페어스 컵 1회 우승을 이루어냈다.TOP 9풀네임: 훌리오 알베르토 모레노포지션: 레프트 백국적: 스페인출..

부트발 잡담 2023.05.28

[부트발 잡담]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 수비수 TOP 10

TOP 10 풀네임: 라파엘 마르케스 알바레스 포지션: 중앙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국적: 멕시코 출생일: 1979년 2월 13일 클럽 경력: 1996 - 1999 아틀라스 1999 - 2003 모나코 2003 - 2010 바르셀로나 2010 - 2012 뉴욕 레드불스 2012 - 2014 레온 2014 - 2015 헬라스 베로나 2016 - 2018 아틀라스 바르셀로나 통산 경기: 284경기 멕시코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2000년대 초반, 바르셀로나가 포르투갈과 남미의 선수들을 다수 영입하던 때에 영입된 선수이다. 깔끔한 대인수비, 태클 능력을 보유했으며 리더십 또한 갖추고 있었다. 신체적 전성기에 잦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으며, 호나우지뉴가 있던 바르셀로..

부트발 잡담 2023.05.22

[부트발 잡담] 17가지 가족 축구선수들

매체에 의해 잘 다뤄지지 않았거나, 국내에 유명하지 않은 사례를 찾아오기 위해 노력했기에 라우드럽 형제, 말디니 부자, 슈마이켈 부자 등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사례는 등장하지 않을 수 않음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1. 마라도나 형제 당대를 뛰어넘어, 축구 역사상 최강의 축구선수로 평가받으며 조국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해 라울과 휴고는 성인인 국가대표 경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축구선수이나, 세 형제 모두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의 프로레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디에고를 제외한 두 형제는 일본에서 아시아 축구를 경험하기도 했다. 2. 바조 형제 7살 터울의 형인 로베르토 바조는 이탈리아 축구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로, 빼어난 외모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화려한 플레이로..

부트발 잡담 2023.05.07

[부트발 잡담] 툴의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With 아르연 로번)

비슷한 위상의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한 가지 능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크게 부각되어 있는 선수와 골고루 능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다양한 툴을 지닌 선수) 중 후자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축구를 소비하는 이들 중 대다수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방식이 반드시 합리적일까? 우리가 위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평가를 하면서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한 가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선 결국 여러 능력이 뒷받침해 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무리 능력이 부각된 스트라이커들은 기본적으로 양질의 슛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야만 하며 이와 관련된 부가적인 능력(위치 선정, 시야, 볼 컨트롤 능력)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하나의 툴로 ..

부트발 잡담 2023.05.04

[풋볼리스타 데 호이] 4월 30일 헝가리의 만능 천재, 오르트 죄르지

풀네임: 죄르지 오르트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포워드 등 국적: 헝가리 출생일: 1901년 4월 30일 클럽 경력: 1915 버셔시 1916 피사 1917 - 1927 MTK 부다페스트 1923 퍼스트 비엔나 (임대) 1928 - 1929 마르세유 1929 - 1930 부다이 11 1932 부다이 11 1933 복스카이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1. 가난했던 어린 시절 1901년 4월 30일,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오르트 죄르지가 태어난다. 오르트에겐 아버지가 없었으며 생계는 어머니가 세탁부 일을 하며 벌어 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책값을 낼 돈조차 없었기에 친구들과 이웃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카테고리 없음 2023.04.30

[풋볼리스타 데 호이] 4월 2일 질주하는 소령, 푸슈카시 페렌츠

풀네임: 푸슈카시 페렌츠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국적: 헝가리, 스페인 출생일: 1927년 4월 2일 클럽 경력: 1943 - 1956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8 - 1966 레알 마드리드 통산 경기: 약 720경기 (헝가리 국가대표 팀 약 85경기)1. 푸르첼드 페렌츠1927년 4월 2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독일인 가정에서 푸르첼드 페렌츠가 태어난다.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독일인(다뉴브 슈바벤인)이었으며 축구선수였다. 시간이 지나, 축구선수를 은퇴한 아버지는 푸르첼드가 10살이 되던 해에 헝가리식으로 이름을 개명했고, 그에 따라 푸르첼드 페렌츠또한 푸슈카시 페렌츠가 된다.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갓난아기 시절부터 축구를 접한 푸슈카시는 키슈페스트에서 성장하며 잉글랜드의 찰리 ..

[칼치오 모먼트] 1958 월드컵 최고의 득점들

칼치오 모먼트 - 블로거가 인상 깊게 본 축구 관련 사진들을 중심으로 그 속에 얽혀있는 이야깃거리들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는 시간입니다.스웨덴 대 헝가리리시 라조스 스웨덴 수비수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볼을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 니어 포스트로 빨려 들어갔다.프랑스 대 브라질로저 피앙토니 센터서클 부근에서 아슬아슬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1 대 1 돌파 후 왼발로 마무리.스웨덴 대 독일군나르 그렌 강하게 처리한 프리킥이 독일의 니어 포스트로 빨려 들어갔다.쿠르트 함린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독일의 좌측 수비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며 골대와의 좁은 각에서 재치 있는 페인팅으로 득점에 성공.프랑스 대 독일 마리안 비스니에프스키 - 레몽 코파 - 이본 두이스의 연계득점 득점자가 가장 돋보이는 득점이 아니지만 가장 화..

칼치오 모먼트 2023.04.01

[부트발 잡담] 크라이프 드림팀의 붕괴, 천재들이 게을렀기 때문일까?

1. 구세주 요한1980년대 후반의 바르셀로나는 경기력적으로 최악이었고, 재정적으로도 부채를 지니고 있었으며,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문제를 겪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인 1988년 5월, 요한 크라이프는 감독으로 바르셀로나의 땅을 밟았다. 직책은 달랐지만 15년 전과 같이 크라이프는 구원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부임 첫 해부터 기존 선수 대부분을 방출시키고 13명의 선수를 새로이 영입했으며, 유소년 팀과 1군 팀의 축구철학을 일치시키는 등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감독과 구단 사이에서의 마찰로 인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겠지만 크라이프에겐 용납되었다.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바르셀로나의 회장이었던 호세 루이스 누녜스는 1978년에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부임했는데 그 해는 크라이프가 축구선수 은퇴를 ..

부트발 잡담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