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발 잡담

[부트발 잡담] 17가지 가족 축구선수들

파울리노 하나 2023. 5. 7. 22:02


매체에 의해 잘 다뤄지지 않았거나, 국내에 유명하지 않은 사례를 찾아오기 위해 노력했기에 라우드럽 형제, 말디니 부자, 슈마이켈 부자 등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사례는 등장하지 않을 수 않음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1.  마라도나 형제


왼쪽부터 휴고, 라울, 디에고 마라도나이며 출생순은 디에고, 라울, 휴고이다.

당대를 뛰어넘어, 축구 역사상 최강의 축구선수로 평가받으며 조국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해 라울과 휴고는 성인인 국가대표 경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축구선수이나, 세 형제 모두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의 프로레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디에고를 제외한 두 형제는 일본에서 아시아 축구를 경험하기도 했다.


2. 바조 형제


왼쪽이 로베르토, 오른쪽이 에디이다.

7살 터울의 형인 로베르토 바조는 이탈리아 축구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로, 빼어난 외모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화려한 플레이로 '판타지스타(Fantasista)'라 불리던 선수였다.
 
동생인 에디는 1부 리그 경험이 존재하지 않으나, 130에 육박하는 득점 기록을 남겼다.


3. 바레시 가족


왼쪽이 프랑코, 오른쪽이 주세페이다.

이탈리아 축구의 대표적인 형제 축구선수로, 각각 AC 밀란과 인테르에 축구선수 경력 대부분을 헌신했으며 둘 다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동생인 프랑코는 주세페를 따라 14세에 인테르 유소년 클럽 입단을 시도하지만 떨어지는 신체 조건을 이유로 탈락했고 이후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 구단인 AC 밀란으로 이적하여 활약하게 된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 리베로로 거론되는 선수 중 하나. 형인 주세페 또한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인테르에 헌신하며 인테르의 전설적인 주장으로 남았다.
 
주세페의 딸이자 프랑코의 조카인 레지나 바레시 또한 인테르의 여성 축구팀에서 헌신했고 주장직을 맡고 원클럽맨으로 남아있다.

레지나 바레시


4. 칸나바로 형제


왼쪽이 파올로, 오른쪽이 파비오이다.

90년대 후반~2000년대에 활약한 형제 축구 선수로 둘 다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둘은 파르마에서 함께 뛰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파르마 이후 파비오는 2006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국민 영웅이 되어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수비수 출신 발롱도르위너가 되었다.

파올로 또한 이후 나폴리에서 오랜 기간 헌신하면서 나폴리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남게 된다.

두 형제는 사이가 좋기로 유명했으며, 파올로의 아들 셋 또한 축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5. 데 부어 형제


왼쪽이 로날드, 오른쪽이 프랑크이다.

데 부어 쌍둥이 형제는 아약스 유소년 시스템의 산물로, 90년대 아약스의 황금기를 이끌어낸 장본인들이다. 이 형제의 특징은 '상반된 위치에서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데, 로날드는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나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워드를 오가며 플레이했으며, 프랑크는 뛰어난 전술안과 볼플레잉 능력을 바탕으로 센터백, 레프트 백,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다.
 
두 형제는 아약스 이후에도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활약했으며, 국가대표에서도 함께 활약했다.


6. 찰스 가족


왼쪽이 존, 오른쪽이 멜

찰스 형제는 웨일스의 형제 축구 선수로, 형인 존 찰스는 리즈 유나이티드와 유벤투스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거구에서 나오는 힘과 이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신사 거인이라 불렸다. 동생인 멜 찰스는 스완지의 전설적인 선수로 미드필더에서 주로 활약했다. 이형제의 특징은 축구적 지능이 뛰어나 중앙 수비수와 중앙 공격수라는 상반된 역할 속에서도 활약했다는 점이며

멜의 아들이자 존의 조카인 제레미 찰스 또한 스완지 시티에서 중앙 공격수로 헌신하며 전설로 남았다.


7. 회네스 형제


왼쪽이 울리, 오른쪽이 디터

회네스 형제는 분데스리가의 대표적 형제 축구선수이자 포워드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형인 울리 회네스는 바이언의 원클럽맨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워드로 활약하며 70년대 전성기의 바이언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74 월드컵 우승에도 영향을 끼쳤으나, 1974-75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의 여파로 1979년에 27이란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
 
동생인 디터는 80년대 바이언에서 포워드로 활약하며 많은 트로피를 구단에 선물했고, 형과 달리 서독 국가대표에서 적은 경기를 뛰며 별다른 업적을 남기진 못했다.


8. 푀르스터 형제


슈투트가르트의 전설적인 형제로 형제 둘이 수비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다는 점은 같지만 동생인 칼 하인츠 푀르스터가 스토퍼로서 극강의 대인수비 능력으로 큰 경기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를 지워버리는 능력을 보여준 반면, 2살 위의 형인 베른트 푀르스터는 대인수비 능력과 함께 뛰어난 전술 안을 바탕으로 좌우측 수비, 중앙 수비와 3선 미드필더 등 다양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 형제는 1983-84 시즌 슈투트가르트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일궈냈으며 1982 월드컵에선 형제가 서독의 중앙수비를 책임지며 월드컵 준우승에 공헌했다.

 

칼 하인츠의 경우 1986 월드컵에도 참가해 자신의 장점인 대인수비 능력으로 멕시코의 우고 산체스,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등 상대팀의 세계 최정상급 에이스들의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 활약으로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다.


9. 찰튼 가족


왼쪽이 잭 찰튼 오른쪽이 보비 찰튼

찰튼 형제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형제로, 형인 잭 찰튼은 리즈 유나이티드 원클럽맨이자 거구의 중앙 수비수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보비 무어와 짝을 이루며 파트너의 신체적 한계를 잘 매워주었다.

동생인 바비 찰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자 유나이티드 트리니티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수비에 가담했으며, 양발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를 뛰어넘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형제는 1966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내며 최초의 '월드컵 우승 형제'가 되었다

이들의 친척 또한 축구선수였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
 
삼촌인 잭 밀번, 조지 밀번, 짐 밀번, 스탄 밀번이 모두 축구선수였으며, 잭 밀번은 리즈의 전설적인 수비수였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촌인 재키 밀번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포워드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찰튼 형제의 위상이 워낙 대단한지라, 이들의 위상이 찰튼 형제에 비견되진 않는다.


10. 마촐라 부자


왼쪽이 발렌티노, 오른쪽이 산드로

마촐라 부자의 이야기는 비극적임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인 발렌티노는 40년대 토리노의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이자, 이탈리아의 중심축이었던 선수였으며,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30세의 나이에 '수페르가의 비극'의 희생자가 되어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인 산드로 마촐라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축구 재능을 갈고닦아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커가 되어 60년대 인테르의 전성기 일명 '그란데 인테르'를 이끌었다.

1963-64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 득점을 해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상대팀의 푸슈카시 페렌츠가 산드로와 유니폼을 교환하며 아버지와 비견하며 마촐라에 대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11.  블린트 부자


아버지가 대니, 아들이 달레이이다

아버지인 대니 블린트는 요한 크라이프에 의해 아약스에 영입된 선수로, 신장은 작았지만 뛰어난 신체능력과 섬세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났기에 리베로와 라이트백의 역할을 병행할 수 있었다. 아들인 데일리 블린트 또한 축구 지능과 볼 플레잉 능력을 앞세워 좌측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 3선 미드필더에서 다양한 활용도를 보이고 있으며, 네덜란드 국가대표로서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아버지가 네덜란드 대표팀의 코치를 맡는 일이 많았기에 부자가 코치와 선수의 관계로 소속되는 일이 꽤 있다.


12. 크라이프 부자


왼쪽이 요한, 오른쪽이 조르디이다.

요한 크라이프는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전설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시대를 앞서나간 사고방식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신체적 능력으로 유럽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조르디 크라이프는 아버지인 요한이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수행 중일 때에 1군 데뷔를 하게 되고 이후 데포르티보에서 잠깐 반짝인 것을 제외하면 부상에 시달리며 재능을 만개하지 못했다는 점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아버지의 인맥으로 인해 맞지 않는 수준에 있던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분명 조르디는 요한의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재능이 없는 선수는 아니었다. 뛰어난 득점 감각과 공간인지 능력,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버지 요한은 아들이 팬들에게 비난 받을 것을 우려해 철저한 확인을 거치고 데뷔시켰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알렉스 퍼거슨의 선택을 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행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것의 증이다.

 

참고로 조르디라는 이름은 요한이 지은 것으로, 카탈루냐 수호성인의 이름이었기에 등록 절차에서 프랑코 정권에 의한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13. 푸슈카시 부자


아들인 푸슈카시는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무시무시한 위력의 왼발 슛으로 유명했다. 헝가리 국가대표 황금기의 중심축으로 기능했으며, 헝가리 혁명으로 인한 망명 생활 이후 30대에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도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푸슈카시 페렌츠의 아버지이자 동명이인인 푸슈카시 페렌츠 시니어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전설적인 선수였으며, 주로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에 돌입하고 아들인 푸슈카시를 지도하고 궁합을 맞추면서 헝가리 리그 우승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들 푸슈카시 페렌의 경우 필자가 다룬 글이 있기에 링크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https://paulinohana.tistory.com/34


14. 포를란 부자 + 카를로스 코라초


왼쪽이 디에고, 오른쪽이 파블로이다.

아들인 디에고 포를란은 경기 조율 능력과 패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플레이메이커로서 기용되기도 했으며, 득점과 관련된 스킬 또한 뛰어났기에 중앙 공격수로도 기용되었다. 특히 2010 월드컵에서 다루기 어렵다던 공인구, 자블라니를 완벽하게 다루며 대회 공동 최다득점자,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아버지인 파블로 포를란은 페냐롤과 상파울루의 전설적인 선수이며 1960년대 전성기 페냐롤의 라이트백으로, 1966 인터컨티넨탈 컵에선 레알 마드리드를 잡으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디에고의 외조부인 카를로스 코라초 또한 축구선수로, 미드필더였으며 인디펜디엔테에서 활약했다.


15. 다 기아 부자


왼쪽이 아데미르 오른쪽이 도밍구스

아버지인 도밍구스는 플라멩구의 레전드이자 1930년대~40년대 남미 최강의 수비수로 힘과 함께 볼을 다루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무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으며 브라질 국가대표로서 1938 월드컵 3위와 1945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후자에선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전성기가 오기 전 브라질을 책임지던 수비수였다.

아들인 아데미르 다 기아는 팔메이라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워드로 활약할 수도 있었다. 신속성과 창의성, 정확성을 모두 갖춘 선수로 브라질 국가대표로서의 업적은 부족하나, 팔메이라스에서 보여준 활약은 가히 당대 최상위 수준의 선수였음에 틀림없다.

팔메이라스의 아데미르 흉상


16. 스카로네 형제


왼쪽이 카를로스, 오른쪽이 엑토르이다.

스카로네 형제는 클루브 데 나시오날의 전설적인 형제들로 이들은 1910년대 중반~2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나시오날의 우루과이 리그 평정을 이끌었다.
 
둘 다 대표팀에서의 활약 또한 뛰어났는데, 특히 10살 터울의 동생인 엑토르는 당대 최고의 기량을 지니고 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득점과 플레이메이킹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루과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거론되는 선수이다. 그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 4회, 올림픽 우승 2회, 초대 월드컵 우승을 우루과이에 선물했으며 1917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과 대회 최우수 선수 선정, 1927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30 월드컵 대회 베스트 11 선정 등에 빛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동생 엑토르 스카로네의 경우 필자가 다룬 글이 있기에 링크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https://paulinohana.tistory.com/6


17. 코임브라 형제 (코임브라 가족)


지쿠의 아버지는 전직 아마추어 축구선수였으며 플라멩구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아버지가 선물한 플라멩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쿠와 형제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쿠를 비롯한 형제들도 축구의 길에 들어서는데, 이중 가장 성공적인 선수는 에두와 지쿠일 것이다. 이 중 동생인 지쿠는 플라멩구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이자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리블러, 플레이메이커, 프리키커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수로, 마라도나와 비견될 수준의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지쿠와 6살 차이의 형인 에두는 아메리카의 전설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아메리카에서만 402경기 212득점을 기록했다.

당대 브라질 최고 수준의 드리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1975년에 플라멩구로 이적했을 때에 잠시나마 지쿠와 함께 팀을 공유하기도 했다.
 
동생 지쿠 코임브라의 경우 필자가 다룬 글이 있기에 링크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https://paulinohana.tistory.com/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