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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타 데 호이] 4월 30일 헝가리의 만능 천재, 오르트 죄르지

파울리노 하나 2023. 4. 30. 19:50


풀네임: 죄르지 오르트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포워드 등
국적: 헝가리
출생일: 1901년 4월 30일

클럽 경력:
1915 버셔시

1916 피사

1917 - 1927 MTK 부다페스트

1923 퍼스트 비엔나 (임대)

1928 - 1929 마르세유

1929 - 1930 부다이 11

1932 부다이 11

1933 복스카이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1. 가난했던 어린 시절


1901년 4월 30일,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오르트 죄르지가 태어난다. 오르트에겐 아버지가 없었으며 생계는 어머니가 세탁부 일을 하며 벌어 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책값을 낼 돈조차 없었기에 친구들과 이웃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돈은 없었지만 오르트의 어린 시절엔 여타 헝가리의 위대한 선수들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듯 축구가 자리 잡아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길거리에 나와 축구를 즐겨했고 오르트는 그 영향으로 축구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깡마른 체격이었지만 또래 아이들과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청소년 클럽인 I.L.K에 입단하는 것으로 길거리를 벗어나 본격적인 축구를 시작하게 된다.


2. 지미 호건에게 선택받다


이후 테레즈바로시 SK, 에르제베트로시 AC를 거쳐 버셔시 SC에 입단하고 1군 데뷔까지 해냈고 피사로 이적 후 MTK 부다페스트의 감독이었던 지미 호건의 선택을 받아 부다페스트에 입단하게 된다.

지도자로 활동하며 헝가리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미 호건

이로서 오르트는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 시기에 오르트는 헝가리 17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팀에 소집되어 국가대표 데뷔까지 해냈다.

 

MTK의 호건은 기존의 슐로서 임레, 샤퍼 알프레드와 새로 영입한 브라운 요제프, 오르트 죄르지를 활용하며 MTK의 전성기를 연다.


3.  정점과 부상


초기의 오르트는 펠드만 줄러, 만디 줄러 등과 파트너가 되어 수비적인 포지션을 섰으나, 1919-20 시즌 샤퍼 알프레드의 이적으로 샤퍼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오르트는 높은 위치에서 플레이하게 됐으며 놀랍게도 공격적인 역할을 맡은 첫 시즌에 헝가리 리그 득점왕의 활약을 보였다. 이후 1920-21, 1921-22 시즌에도 헝가리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해내며 3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1923년엔 오스트리아의 퍼스트 비엔나로 잠시 임대 생활을 보냈다.

 

1924엔 파리 올림픽에 헝가리 국가대표로 참가하면서 국민들에게 높은 성적을 기대받았지만 2라운드에서 이집트에게 0-3 충격패를 당하며 씁쓸히 퇴장해야 했다.

1924년 헝가리 국가대표 선수단

1924-25 시즌 헝가리 리그를 MTK가 우승함으로 오르트는 MTK입단 이후 헝가리 리그 8시즌 연속 우승을 해냈다. 구단 입장에선 9연속 우승이었다. 그러나 이 시즌이 오르트가 선수로서 트로피를 들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었다.

 

1925년 9월, FK 오스트리아 빈 과의 친선 경기에서 오르트가 요한 텐들러와 경합을 하다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1년 동안 피치를 밟을 수 없었다. 복귀 이후에도 부상의 여파를 떨쳐내지 못한 오르트는 결국 1927년에 MTK와 결별했다. 이후 마르세유를 비롯한 팀들에서 활약하고 몇 년 후에 축구화를 벗게 된다.

MTK의 홈 구장에 있는 오르트 죄르지의 흉상


오르트는 뛰어난 축구 지능을 앞세워 경기장의 모든 구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선수였는데, 특히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우아한 기술을 활용해 득점에 성공해 내는 모습은 가히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이로웠기에 많은 평론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