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26

요한 네스켄스 사망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요한 네스켄스가 지난 10월 6일, 향년 73세에 사망했습니다. 풀네임: 요하네스 야코뷔스 네스켄스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를 포함한 중원 전 지역 국적: 네덜란드 출생일: 1951년 9월 15일 클럽 경력: 1968 - 1970 RCH 1970 - 1974 아약스 1974 - 1979 바르셀로나 1979 - 1984 뉴욕 코스모스 1984 - 1985 흐로닝언 1985 포트로더데일 선 1985 - 1986 캔자스시티 코메츠 (실내 축구) 1986 - 1987 뢰벤브라우 (아마추어 축구) 1987 - 1990 바 1990 - 1991 추크 94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전설로 회자되는 이 선수는 1974 네덜란드 대표팀의 핵심 선수 중 하나로 이 대회에서 실버슈를 수상하기도 했습..

카테고리 없음 2024.10.08

[부트발 잡담] 축구 광인 좌파, 세상을 떠나다.

지난 6일,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인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가 향년 85세에 세상을 떠났다. 메노티는 축구를 정치적 개념인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보기 시작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선수의 창의성을 중요시 여기며 공격적인 축구를 숭배했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축구를 일명 좌익 축구로, 그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규율과 짜임새가 철저한 수비적 축구를 우익 축구로 분류했다. 메노티는 좌익 축구를 사랑한 반면에, 우익 축구는 선수들의 창의성 성장을 억제하며 시스템에 의존하는 바보들을 생산하는 축구라고 생각했다. 대중들이 메노티하면 떠올리는 대표적 업적은 1978 월드컵 우승일 것이다. 물론 군부독재 아르헨티나의 압력이 가해진 대회이기에 이를 메노티와 아르헨티나의 온전한 업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부트발 잡담 2024.05.08

[부트발 잡담] 3월 21일: 축구계의 돌연변이들이 태어난 날

지난 3월 21일에 생일을 맞은 세 축구 선수가 있다. 바로 로타어 마테우스, 로날드 쿠만, 호나우지뉴 가우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생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축구 종목의 역사를 통틀어 피치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돌연변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명백하게 이질적인 선수였지만 세계 축구의 중심에 위치했던 최고의 선수였다는 점이다. 로타어 마테우스는 독일 국가대표팀과 인테르 나치오날레 밀라노,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로 전포지션에 필요한 덕목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던, 말 그대로 만능의 선수였다.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더라도 경이로운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선수들 사이를 휘젓는 드리블과 정확한 패스, 날카로운 킥을 통해 공격작업의 중심으로서 작용했고, ..

카테고리 없음 2024.03.23

[부트발 잡담] '공격수 출신 감독은 명장이 될 수 없다.' 클린스만이 부풀린 오해

'감독이 공격수 출신인가' 이건 '결승전을 앞둔 라커룸의 분위기가 제 3자의 눈에 얼마나 정돈 되어 있는가' 만큼이나 큰 고려할 가치가 없는 부분이다. 후방 자원의 필드 전체를 바라보는 능력을 강조한 요한 크라이프의 영향인지 대중들이 공격수는 피치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인식과 전술적 안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크라이프의 '그 강조'는 어디까지나 피치위에서 후방에 위치한 선수가 가질 수 있는 시야라는 이점을 더욱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지. 그 선수의 지도자적 자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즉 감독의 선수시절 포지션은 결과가 나쁘면 얼마든지 나쁘게 연관지어 볼 수 있고, 결과가 좋으면 얼마든 좋게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1. 수적 열세2022년..

부트발 잡담 2024.02.18

[풋볼리스타 데 호이] 페렌츠바로시 특급 라이트백, 노박 데죄

풀네임: 노박 데죄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국적: 헝가리 출생일: 1939년 2월 3일 클럽 경력: 1955 좀바들리 포스타스 1956 - 1961 좀바들리 할라다스 1961 - 1972 페렌츠바로시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헝가리 국가대표 9경기) 1. 본격적인 탄생 1939년 2월 3일, 베네딕토 수도원의 성 게오르기우스 교회로 유명한 마을인 야크의 한 집에서 노박 데죄가 태어난다. 노박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기며 재능을 드러냈다. 처음에 중앙 공격수로 활약한 그는, 에지하사스랏도크의 1군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노박은 축구와 학업을 병행해 15살에 좀바텔리 기계공대에 입학하여 탄식스 기숙사생이 되었다. 그러나 노박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컸기에 결국 학업을 놓고 본격적으로 축구에 ..

[부트발 잡담] 크라이프는 독재자의 팀에서 뛰지 않으려 했는가?

축구계에서 요한 크라이프라는 존재가 가지는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펠레, 마라도나, 메시와 견주어질 만한 인물이며 그의 가치는 선수라는 틀에 가둘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영향력이 너무 컸던 탓인지, 크루이프의 주변에는 다양한 오해가 따라다니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오해는 정치와 관련된 부분으로 특히 크라이프가 독재를 혐오하기에 레알 마드리드의 구애를 거절하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며, 아들의 이름을 조르디로 지었으며, 1978 월드컵에 불참했다고 알고 있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오늘은 위의 일화들의 오해를 덜어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레알 마드리드행 거절 - 독재자의 팀에서 뛰기 싫었다? 사실 모든 일의 시작은 1970년으로, 자신을 프로데뷔 시킨 은사이자, 당시 바르셀로나의 감..

칼치오 모먼트 2024.01.28

[부트발 잡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1월생 올스타

GOALKEEPER풀네임: 잔루이지 부폰 포지션: 골키퍼 국적: 이탈리아 출생일: 1978년 1월 28일 클럽 경력: 1995 - 2001 파르마 2001 - 2018 유벤투스 2018 - 2019 파리 생제르맹 2019 - 2021 유벤투스 2021 - 2023 파르마 통산 경기: 1181경기 (이탈리아 국가대표 176경기)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를 정상급 골키퍼의 자리를 유지했다. 수비진을 지휘하는 능력과 함께 안정적이며 노련한 선방능력이 돋보였으며, 소속 구단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이 대단했기에, 팀 전체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골키퍼였다. 파르마 때부터 리그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인 부폰은, 파르마에게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UEF..

부트발 잡담 2024.01.21

[풋볼리스타 데 호이] 신이 내린 대가, 도밍구스 다 기아

풀네임: 도밍구스 안토니우 다 기아 포지션: 센터하프, 센터백 국적: 브라질 출생일: 1912년 11월 19일 클럽 경력: 1929 - 1932 방구 1932 바스쿠 다 가마 1933 나시오날 1934 - 1935 바스쿠 다 가마 1935 - 1936 보카 주니어스 1936 - 1943 플라멩구 1943 -1947 코린치안스 1948 - 1950 방구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브라질 국가대표 30경기) 1. 그들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것 1912년 11월 19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도밍구스 다 기아가 태어난다. 건장한 체구와 탁월한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던 이 소년은 또래 아이들과의 축구를 즐겨했으며, 이윽고 축구 선수를 꿈꾸게 된다. 사실, 다 기아가 태어났을 때의 브라질은 '축구 강국'..

[부트발 잡담] 이탈리아의 위대한 감독 4인 - 비토리오 포초

이탈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지도자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 중 제일은 누구일까? 아마 라이트 팬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현역 감독으로 활약 중인 카를로 안첼로티일 것이다. 그렇다면 안첼로티 이외의 감독중에서도 이탈리아와 세계 축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감독은 누가 있을까? 내 머릿 속엔 넷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 중 하나는 지나치게 공격 중심적인 축구에서 수비를 고려하기 시작한 혁명가였으며, 하나는 이탈리아식 축구의 방향을 잡아준 인도자였고, 하나는 이탈리아의 보수적인 성향에 반발하는 진보적 괴짜 철학가였으며, 또 하나는 전술적 대처능력의 유연성으로 이탈리아식 축구의 전형을 보여준 전술가였다.비토리오 포초 비토리오 포초 감독에 대해 말하기 전에 1925년 개정 전의 오프사이드 ..

부트발 잡담 2023.11.12

[풋볼리스타 데 호이] 라 플라타의 국가대표 영웅, 마누엘 페레이라

풀네임: 마누엘 페레이라 포지션: 포워드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일: 1905년 10월 22일 클럽 경력: 1921 - 1924 클루브 아르헨티노 1924 - 1933 에스투디안테스 1933 - 1935 리버 플레이트 1935 - 1936 에스투디안테스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아르헨티나 국가대표 21경기)1. 라 플라타의 교수님들1905년 10월 22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서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도시인 트렌케 라우켄에서 마누엘 페레이라가 태어난다.산업혁명 이후, 아르헨티나는 비옥하고 넓은 경작지를 앞세워 상당한 부를 쌓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히기에 이르는 대부국이 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경제적 여유와 1차 산업의 발달은 필히 노동자 문화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