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발 잡담

[부트발 잡담] 툴의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With 아르연 로번)

파울리노 하나 2023. 5. 4. 22:59

비슷한 위상의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한 가지 능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크게 부각되어 있는 선수와 골고루 능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다양한 툴을 지닌 선수) 중 후자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축구를 소비하는 이들 중 대다수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방식이 반드시 합리적일까?
우리가 위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평가를 하면서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한 가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선 결국 여러 능력이 뒷받침해 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무리 능력이 부각된 스트라이커들은 기본적으로 양질의 슛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야만 하며 이와 관련된 부가적인 능력(위치 선정, 시야, 볼 컨트롤 능력)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하나의 툴로 큰 업적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다른 부가적인 능력의 완성도 또한 뛰어났다고 생각할만한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그렇기에 선수 평가에 있어서 '툴의 다양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두기가 어렵다.

우리의 시각에선 한 가지 장점만 부각되어 보이겠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선 여러 툴이 함께 작용하고 있을 수 있기에 기준을 잡기가 애매하다.

우리에게 원툴과 정형화된 플레이 패턴이란 이미지로 가장 잘 알려진 선수는 아르연 로번일 것이다.

로번의 온 더 볼 상황에서의 플레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선방향을 선택하는 빈도와 왼발에 대한 의존도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알고도 못 막는 플레이'란 로 유명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느낀다.

수비수들은 로번이 안쪽으로 치고 들어올 것이란 것을 감각적으로 알곤 있겠지만 '어떻게' 치고 들어올지 까지는 알고 있지 않기에 세계적인 수비수들이 로번의 플레이에 당하는 것이다.

로번은 동선을 왼쪽으로 설정한다는 점은 같지만, 짧게 한번 쳐놓고 반박자 빠르게 파 포스트로 감아 차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페널티 스폿 근처까지 치고 가거나 골대 좌측까지 치고 들어가기도 한다. 로번이 저 동선을 가져가는 도중에도 타이밍에 대한 변수가 몇 번이고 발생한다.

그리고 로번은 니어 포스트와 파 포스트를 자유롭게 결정지을 수 있는 각별한 슛 감각 또한 갖추고 있다.


로번의 플레이가 잘 통하는 이유는 비슷한 동선을 설정하더라도 수비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강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강요하는 능력'은 우리가 툴이 다양한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의 핵심과도 같다.

그렇다면 로번은 툴이 다양하지 못한 선수였을까?
그의 플레이에 다양성이 부족했다면 세계적인 수비수들이 로번에게 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