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에 생일을 맞은 세 축구 선수가 있다. 바로 로타어 마테우스, 로날드 쿠만, 호나우지뉴 가우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생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축구 종목의 역사를 통틀어 피치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돌연변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명백하게 이질적인 선수였지만 세계 축구의 중심에 위치했던 최고의 선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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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어 마테우스는 독일 국가대표팀과 인테르 나치오날레 밀라노,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로 전포지션에 필요한 덕목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던, 말 그대로 만능의 선수였다.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더라도 경이로운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선수들 사이를 휘젓는 드리블과 정확한 패스, 날카로운 킥을 통해 공격작업의 중심으로서 작용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또한 많은 득점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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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우스는 바이언 1기 땐 분데스리가 3회 우승, 포칼을 1회 우승 등의 업적을 이뤘고, 키커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마테우스는 세리에와 UEFA 컵을 우승했고, 독일 국가대표로서 1990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실버볼을 수상해 1990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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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바이언으로 돌아온 마테우스는 후방으로 이동해 리베로와 스위퍼로서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키커 올해의 리베로에 3회 선정되었으며 키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 1998-99 시즌엔 38세에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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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 바르셀로나, PSV 에인트호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로 정교한 킥과 패스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공격작업 관여가 돋보이던 선수였다. 특히 데드볼 상황에서의 득점력이 대단했던 선수로, 팀의 페널티 킥과 프리킥을 전담하며 프로 통산 250골 이상을 기록해 수비수 통산 득점 1위에 위치해있다.
쿠만은 에인트호번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987-88 시즌 트레블과 1988-89 시즌 더블을 비롯한 업적을 이뤄냈다. 유로 1988에선 리누스 미헐스 감독의 지도 아래에서 네덜란드 공격전개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네덜란드 유일의 국가대표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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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쿠만은 크라이프 드림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라 리가 4연패와 구단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 등의 업적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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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쿠만의 모습은 돌연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질적인 선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르셀로나 축구가 요구하는 수비수의 표본과 같은 선수로 남았으며, 현대에는 쿠만이 지니고 있던 후방에서의 조율 능력과 안정적인 발밑이 세계적인 수비수라면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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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지뉴 가우초는 브라질 국가대표팀과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로 흡사 프리스타일 묘기를 보는듯한 현란한 기술을 피치 위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돋보였던 선수다. 공을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시야도 갖추고 있었기에 드리블과 패스를 센스 있게 섞어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사람들은 당시까지 본 적 없는 유형의 호나우지뉴의 이질적인 플레이스타일과 외모를 보고 외계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활약하던 22세의 호나우지뉴는 2002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브라질 국가대표 3R이란 막강한 공격진을 형성해 탁월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며 라이징스타로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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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3-2004 시즌에 파리 생제르맹을 떠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가 활약했던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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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의 바르셀로나의 에이스가 된 호나우지뉴는 팀을 라 리가 2연패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의 업적으로 이끌었다.
호나우지뉴는 바르셀로나에서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5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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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에서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 정상에 올라본 세명의 3월 21일생 선수.
그들은 돌연변이임과 동시에 일류 중 일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라, 일류의 눈이 삼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작성한 시점의 로타어 마테우스가 몸담았던 바이에른 뮌헨과 로날드 쿠만과 호나우지뉴 가우초가 몸담았던 바르셀로나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기에, 지금 시점에서 각 팀의 팬들이 가장 그리워할만한 선수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명문에서 위의 선수들과 같은 혁명적인 선수들이 등장해 암울한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또한 최근 해외 축구의 흥미 요소다.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이메일: 9cruyff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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