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발 잡담

[부트발 잡담] 스페인 라 리가 출장 기록 올스타 Tier-3

파울리노 하나 2025. 1. 2. 18:12
  • 선수의 경기 출장 수를 기준으로 선정하되, 포지션과 포메이션의 밸런스는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은퇴 선수와 현역 라 리가 선수의 경기 수 차이가 15경기 이하일 경우, 기록 경신 가능성을 고려해 현역 선수를 선정했습니다.

GOALKEEPER - 11위, 510경기



풀네임: 이케르 카시야스 페르난데스

포지션: 골키퍼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81년 5월 20일

클럽 경력:
1999 - 2000 레알마드리드
1999 - 2015 레알 마드리드
2015 - 2020 포르투


'San Iker - 성 이케르'
 
스페인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 중 하나로, 작은 신장에도 탁월한 순발력과 반사신경을 활용한 선방으로 팀을 구해내며, 탁월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어 당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다.
 
어린 나이부터 갈락티코 정책으로 인해 수비 밸런스가 무너진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탁월한 활약을 보였던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라 리가 5회, 챔피언스 리그 3회, 국왕컵 우승 2회 우승을 구단에 선물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선 자국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끌어 세 대회의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었으며, 2010 월드컵에선 야신상을 수상했다.
 
2008부터 2012년까지 IFFHS 세계 최우수 골키퍼, 월드 베스트 XI에 5회 연속 선정되었고, 2008년엔 발롱도르 4위에 선정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최다 출장 2위,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클린시트 2위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SWEEPER - 28위, 460경기



풀네임: 후안 안토니오 라라냐가 구루차가

포지션: 중앙 수비수, 스위퍼, 수비형 미드필더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58년 7월 3일

클럽 경력:
1980 - 1994 레알 소시에다드


'제2의 코르타바리아'
 
레알 소시에다드의 충성스러운 원클럽맨이자 1980년대 라 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커리어 초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이나시오 코르타바타의 은퇴 후 존 토샥 감독 밑에서 3백의 일원으로 기용되며 수비수로 역할을 변경하게 되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만큼 전술적 이해도와 레알 소시에다드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고, 말년에는 팀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라 리가 2연패와 국왕컵을 구단에 안겨줬으며 1982-83 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 진출에도 기여했다. 1987-88 시즌엔 돈발롱 상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LEFT CENTRE BACK - 26위, 461경기



풀네임: 알베르토 고리스 에차르테

포지션: 중앙 수비수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58년 2월 16일

클럽 경력:
1979 - 1993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의 철강왕'
 
1980년대 레알 소시에다드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이자 레알 원클럽맨으로, 당대 최고의 스페인 수비수 중 하나였다. 신장이 큰 편은 아니었으나 운동능력과 낙하지점 포착 능력을 활용한 대인수비엔 능했으며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이나시오 코르타바리아, 아구스틴 가하테, 호세 안토니오 라라냐가 등 다양한 선수들과 합을 맞췄던 알베르토 고리스는 라 리가 2연패, 국왕컵 우승, 1982-83 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 진출 등의 업적을 구단에 구단에게 바쳤다.


RIGHT CETRE BACK - 31위, 454경기



풀네임: 크리스토발 파랄로 아길레라

포지션: 라이트백, 중앙 수비수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67년 8월 21일

클럽 경력:
1987 - 1989 바르셀로나
1988 - 1989 오비에도 (임대)
1989 - 1991 로그로네즈
1991 - 1992 바르셀로나
1992 - 1995 오비에도
1995 - 2001 에스파뇰
2001 - 2003 파리 생제르맹


'라이트백 라 리가 출장 1위'
 
1990년대 라 리가에서 활약한 잔뼈 굵은 라이트백으로, 훌륭한 대인수비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풀백치고는 신체조건이 좋은 편이었기에 중앙 수비수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니어 커리어를 시작한 파랄로는 요한 크루이프의 아래에서 바르셀로나가 구단 역사에 기록될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에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고, 바르셀로나를 떠나 오비에도에 정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에스파뇰로 이적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크리스토발은 1999-00 시즌 국왕컵 우승을 구단에 바쳤다.


DEFENSIVE MIDFIELDER -  23위, 466경기



풀네임: 도나투 가마 다 시우바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62년 12월 30일

클럽 경력:
1981 - 1982 아메리카(RJ)
1983 - 1988 바스코 다 가마
1988 - 199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3 - 2003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수페르 대포르'
 
라코루냐의 수페르 데포르 시대를 이끈 브라질 출신 스페인 귀화 선수로, 전술적 이해도가 뛰어나며 신체의 탄력과 힘이 좋아서 경합 상황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였다.
 
탁월한 체력으로 성실하게 피치 전역을 돌아다니고 축구 지능과 전술적 이해도를 앞세워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등 브라질리언 치고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있는 건실한 플레이스타일을 지니고 있었으며, 대포알과 같은 슈팅 파워로 팀에 기여했다.
 
도나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국왕컵을 두 번 들어 올렸으며, 라코루냐에선 라 리가 우승과 국왕컵 2회 우승을 이끌었다.


LEFT CENTRAL MIDFIELDER - 39위, 442경기



풀네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루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 윙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84년 5월 11일

클럽 경력:
2001 - 2003 바르셀로나 B
2002 - 2018 바르셀로나
2018 - 2023 비셀 고베


'El Ilusionista, El cerebro - 환상가, 뇌'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커리어 초반엔 유틸리티성을 무기로 내세웠으나 점차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 잡으면서 재능의 꽃을 피웠다. 뛰어난 탈압박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거의 공을 빼앗기지 않았으며,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일으키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는데, 마치 수비수를 무언가에 홀리게 만드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라 리가 우승 9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4회, 국왕컵 우승 6회라는 업적을 달성한 이니에스타는 두 번의 트레블의 주역이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스페인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끌며 당대의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으로 만든 선수 중 하나였다.
 
이니에스타는 탄탄한 기본기와 공간의 적절한 활용으로 라 리가 최우수 미드필더 5회 수상, 9년 연속 월드베스트 수상, ESM 선정 올해의 팀 2회 수상에 빛나는 활약을 펼쳤고, 현대 미드필더의 교본으로 자리 잡았다.
 
이니에스타는 탄탄한 기본기와 공간의 적절한 활용으로 라 리가 최우수 미드필더 5회 수상, 9년 연속 월드베스트 수상, ESM 선정 올해의 팀 2회 수상에 빛나는 활약을 펼쳤고, 현대 미드필더의 교본으로 자리 잡았다.


RIGHT CENTRAL MIDFIELDER - 30위, 455경기



풀네임: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 안소레나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55년 1월 1일

클럽 경력:
1974 - 1989 레알 소시에다드


'추리 우르딘의 지휘자'
 
레알 소시에다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 중 하나로, 레알 소시에다드의 1980년대 전성기의 사령탑과도 같은 선수였다. 공을 다루는 재능이 뛰어났으며, 넓은 시야를 활용한 창의적인 패스를 시도하는 등의 화려한 플레이스타일로 유명했다.
 
아랫지점부터 공을 끌고 올라와서 동료에게 패스 후 전방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줬으며 득점력 또한 겸비한 선수다.
 
원클럽맨인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는 레알애서 라 리가 2연패, 국왕컵 우승, 유러피언컵 준결승 진출 등의 업적을 달성했다.


ATTACKING MIDFIELDER - 20위, 479경기



풀네임: 호아킨 알론소 곤살레스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56년 6월 9일

클럽 경력:
1976 - 1992 스포르팅 히혼


'히혼의 플레이메이커'
 
1980년대 스포르팅 히혼의 황금기를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 공격형 미드필더로 큰 키임에도, 기민한 움직임과 공을 다루는 탁월한 기술력과 정확하고 창의적인 패스를 지니고 있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전술적 지능이 뛰어났다.
 
원클럽맨으로서 2부 리그에서부터 선수생활 전체를 히혼에 바친 호아킨은 히혼의 황금기를 이끌면서도 히혼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을 때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승격에 기여했다. 다년간 팀의 주장으로 헌신했으며 히혼 역대 출장 1위 선수로 남아있다.


LEFT WING - 36위, 447경기



풀네임: 페드로 무니티스 알바레스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라이트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75년 6월 19일

클럽 경력:
1995 - 2000 라싱 산탄데르
1997 - 1998 바다호스 (임대)
2000 - 2003 레알 마드리드
2002 - 2003 라싱 산탄데르 (임대)
2003 - 2006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2006 - 2012 라싱 산탄데르


'칸타브리아의 황제, 릴리앙 튀랑의 악몽'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라리가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체격은 왜소하지만 총알 같은 속도와 낮은 무게중심에서 나오는 섬세한 볼 컨트롤로 박스 안에서 상대 골문을 위협하는 공격수였다.
 
라싱에서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무니티스는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스티브 맥마나만, 산티아고 솔라리, 사비우 등과 경쟁하며 마드리드에서 생활했으며, 마드리드에서 라 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한다.
 
이후 데포르티보와 라코루냐를 거쳐 자신의 커리어의 시작점인 라싱 산탄데스로 돌아와 생활하게 되는데, 특히 라싱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 주장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언제 은퇴를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단이 내쫓을 때까지 뛸 것이라 말했다.
 
국가대표에선 유로 2000에서 유고슬라비아와 프랑스전에서의 활약이 인상 깊었는데 무니티스에게 페널티킥을 내준 프랑스 대표팀의 튀랑은 "무니티스는 나보다 훨씬 작고 빨랐고, 나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하프타임에 심지어 축구화까지도 갈아 신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대 감독이 무니티스를 빼기로 했다. 나는 한동안 무니티스 생각만 해도 악몽에 시달렸다. 만약 나를 놀라게 하고 싶으면, "조심해, 무니티스가 있어!"라고 말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선수시절 상대했던  가장 위협적인 상대 중 하나로 페드로 무니티스를 뽑았다.


RIGHT WING - 33위, 452경기



풀네임: 호세바 안도니 에체베리아 리자르디

포지션:라이트윙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77년 9월 5일

클럽 경력:
1995 레알 소시에다드
1995–2010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에서 태어난 사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축구를 배우고 프로 데뷔까지 해냈으나 당시 스페인 18세 이하 선수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330만 유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아틀레틱 빌바오로 이적해 은퇴할 때까지 헌신했다.
 
탁월한 체력과 빠른 속도로 공수에 가담했으며,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능력이 뛰어났다. 축구 지능이 뛰어나 공격진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슛도 정확해서 득점력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그러나 아틀레틱 클루브에서 단 하나의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에체베리아는 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선수였기에 트로피를 찾아 팀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팀을 떠나지 않고 은퇴를 앞둔 마지막 시즌에는 무급으로 활약할 정도로 아틀레틱 클루브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CENTRE FORWARD - 35위, 448경기



풀네임: 엔리케 카스트로 곤살레스

포지션: 센터 포워드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49년 9월 23일

클럽 경력:
1967 - 1968 엔시데사
1968 - 1980 스포르팅 히혼
1980 - 1984 바르셀로나
1984 - 1987 스포르팅 히혼


'El Brujo - 마법사'
 
1980년대 스포르팅 히혼의 황금기를 이끈 공격수로, 스포르팅 히혼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골 냄새를 맡는 능력과 슛의 정확도가 매우 뛰어난 말 그대로 스트라이커, 득점 기계였다.
 
2부 리그 득점왕의 활약으로 히혼의 라 리가 승격을 이끌며 구단 황금기의 시작을 알린 키니는 히혼에서 피치치를 3회 수상했다. 그중 1975-76 시즌에는 퀴니는 피치치를 수상했음에도 히혼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는데, 다음 시즌에 다시 한번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며 2부 리그 우승을 이끌며 히혼을 승격시켰으며, 1979-80 시즌엔 피치치와 함께 돈발롱상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30대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에도 탁월한 활약을 보이며 피치치를 2회 수상했으며 라 리가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국왕컵 (2회), UEFA 컵위너스컵 등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이적 첫 시즌에 바르셀로나가 후반기 리그 선두를 달리며 라 리가 우승도 해낼 수 있었으나 퀴니가 총을 든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영향으로 인해 시즌 막판에 5위로 떨어지며 우승이 좌절되었다. 그 정도로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선수였다.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이메일: 9cruyff14@gmail.com
인스타그램: paulino_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