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타 데 호이

[풋볼리스타 데 호이] 바르셀로나의 일 코멘다토레, 주젭 보테르 마스

파울리노 하나 2024. 7. 23. 11:00

 


풀네임: 주젭 보테르 마스

역할: 스카우터

국적: 스페인
출생년: 1906년
 
클럽 경력:
1925 - 1934 바르셀로나 리저브
1934 - 1973 바르셀로나


 
1906년의 어느 날 바르셀로나의 로스피탈레트 데 요브레가트시에서 주젭 보테르 마스가 태어났다. 바르셀로나 태생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FC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팬이 된 그는 선수의 재능을 보는 훌륭한 안목을 이용하여 스카우터가 되었고 16세에 카탈루냐 축구협회와 협력했다.
 
이후 1925년엔 바르셀로나 리저브 팀에서 약 9년을 일하고 바르셀로나의 26대 회장, 조안 코마 시라롤스의 눈에 띄어 바르셀로나의 1군 선수들을 스카우팅 하기에 이른다.

조안 코마

 
스카우터로서 자신이 서포트하는 클럽에 직접적인 의견제시를 할 수 있게 된 보테르는 1934년에 각각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포워드와 하프가 될 주젭 에스콜라와 주젭 라이키의 영입을 이끌며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터로서의 시작을 알렸고, 처음엔 라몬 요렌스와, 60년대엔 자신의 제자인 오리올 토르트와 협력하며 약 40년간 바르셀로나에서 수 많은 재능을 발견했다.

오리올 토르트

 
1973년, 보테르는 질병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했고 바르셀로나의 리저브팀이 활용중인 파브라 이 코츠의 경기장에서 보테르의 은퇴식을 치렀다. 무려 80명이 넘는 옛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참가한 레전드 선수들은 레전드의 이름을 딴 4팀, 팀 에밀리 사기 바르바, 팀 비센스 피에라, 팀 파울리노 알칸타라, 팀 주젭 사미티에르(범접하기 힘든 기록을 세운 선수이나, 은퇴 전과 후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 몸을 담은 것은 아이러니하다.)으로 나뉘어서 경기를 펼쳤다.

 
유명 카탈란 가수 조안 마누엘 세라도 초청되어 은퇴식은 성대하게 치뤄졌다. 때마침 크라이프가 영입된 시기이기도 했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은퇴식이었다.
 

 
그러나 성대하게 치뤄진 은퇴식도 보테르의 건강 악화를 막진 못했고, 결국 보테르는 은퇴로부터 5년 뒤인 1978년에 눈을 감는다.


 
그의 안목이 영입과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의 리스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주젭 에스콜라 (1934 - 37, 1940 - 48 / 포워드 / 310 경기 236 득점)
  • 주젭 라이키 (1934 - 45 / 센터하프 / 247 경기 48 득점
  • 프란체스크 칼베트 (1939 - 52 / 풀백 / 370 경기 11 득점)
  • 주젭 세게르 (1943 - 57 / 하프백 / 495 경기 147 득점)
  • 에스타니슬라우 바소라 (1946 - 58 / 윙 / 444 경기 179 득점)
  • 구스타우 비오스카 (1950 - 58 / 중앙 수비수 / 255 경기 5 득점)
  • 에두아르드 만촌 (1950 - 57  / 윙 / 254 경기 105 득점)
  • 조아킴 브루게 헤라스 (1951 - 60 / 센터백 / 212 경기 1 득점)
  • 지크프리트 그라시아 (1952 - 66 / 레프트백 / 536 경기 23 득점)
  • 후스토 테하다 (1953 - 61 / 윙 / 271 경기 139 득점)
  • 마르티 베르헤스 (1956-1966 / 하프백 / 438 경기 47 득점)
  • 엔릭 겐사나 (1956 - 64 / 하프백 / 315 경기 25 득점)
  • 페란 올리베라 (1956-69 / 중앙 수비수, 풀백 / 524 경기 1 득점)
  • 로드리 (1958 - 63 / 중앙 수비수 / 237 경기)
  • 살바도르 사두르니 (1961 - 76 / 골키퍼 / 500 경기)
  • 엘라디오 실베스트레 (1962 - 72 / 라이트백 / 450 경기 15 득점)
  • 주젭 마리아 푸스테 (1962 - 1972 / 미드필더 / 410 경기 119 득점)
  • 카를레스 렉사치 (1965 - 81/ 윙 / 672 경기 221 득점)


 
 
 
보테르가 아닌 사람의 영입 추천의 역할이 컸거나, 시기상 보테르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바르셀로나가 픽하는 과정에서 보테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했을지에 대해 미지수이지만, 바르셀로나의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아래의 선수들 영입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라슬로 쿠발라 ( 1950-61 / 포워드 / 357 경기 281 득점)

 

  • 코치시 산도르 (1958 - 66 / 포워드 / 240 경기 164 득점)

 

  • 졸탄 치보르 (1958 - 61 / 포워드 / 93 경기 58 득점)

 

  • 요한 크루이프 (1973 - 78 / 포워드 / 231 경기 86 득점)

 
1973년에 질병으로 은퇴하기까지 그가 바르셀로나 1군에 스카우트에 힘쓰고 있는 동안 바르셀로나는 7번의 라 리가 우승, 10번의 국왕컵 우승, 3번의 코파 에바 두아르테 우승, 2번의 라틴 컵 우승, 3번의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 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보테르가 은퇴한 이후에도 보테르가 스카우트한 선수들은 활동을 이어갔고, 오리올 토르트를 비롯한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 이후 라 마시아와 유소년 스카웃 & 교육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으니 보테르의 바르사에 끼친 영향력은 그가 팀에 머문 기간으로만 설명하긴 힘들다.

오리올 토르트

 
자신이 응원하던 구단을 위한 선수를 연구하며 약 40년을 헌신하다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스타가 영입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커리어를 마무리한 보테르,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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