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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 주젭 보테르 마스
역할: 스카우터
국적: 스페인
출생년: 1906년
클럽 경력:
1925 - 1934 바르셀로나 리저브
1934 - 1973 바르셀로나
1906년의 어느 날 바르셀로나의 로스피탈레트 데 요브레가트시에서 주젭 보테르 마스가 태어났다. 바르셀로나 태생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FC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팬이 된 그는 선수의 재능을 보는 훌륭한 안목을 이용하여 스카우터가 되었고 16세에 카탈루냐 축구협회와 협력했다.
이후 1925년엔 바르셀로나 리저브 팀에서 약 9년을 일하고 바르셀로나의 26대 회장, 조안 코마 시라롤스의 눈에 띄어 바르셀로나의 1군 선수들을 스카우팅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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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터로서 자신이 서포트하는 클럽에 직접적인 의견제시를 할 수 있게 된 보테르는 1934년에 각각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포워드와 하프가 될 주젭 에스콜라와 주젭 라이키의 영입을 이끌며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터로서의 시작을 알렸고, 처음엔 라몬 요렌스와, 60년대엔 자신의 제자인 오리올 토르트와 협력하며 약 40년간 바르셀로나에서 수 많은 재능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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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보테르는 질병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했고 바르셀로나의 리저브팀이 활용중인 파브라 이 코츠의 경기장에서 보테르의 은퇴식을 치렀다. 무려 80명이 넘는 옛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참가한 레전드 선수들은 레전드의 이름을 딴 4팀, 팀 에밀리 사기 바르바, 팀 비센스 피에라, 팀 파울리노 알칸타라, 팀 주젭 사미티에르(범접하기 힘든 기록을 세운 선수이나, 은퇴 전과 후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 몸을 담은 것은 아이러니하다.)으로 나뉘어서 경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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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카탈란 가수 조안 마누엘 세라도 초청되어 은퇴식은 성대하게 치뤄졌다. 때마침 크라이프가 영입된 시기이기도 했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은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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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대하게 치뤄진 은퇴식도 보테르의 건강 악화를 막진 못했고, 결국 보테르는 은퇴로부터 5년 뒤인 1978년에 눈을 감는다.
그의 안목이 영입과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의 리스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주젭 에스콜라 (1934 - 37, 1940 - 48 / 포워드 / 310 경기 236 득점)
- 주젭 라이키 (1934 - 45 / 센터하프 / 247 경기 48 득점
- 프란체스크 칼베트 (1939 - 52 / 풀백 / 370 경기 11 득점)
- 주젭 세게르 (1943 - 57 / 하프백 / 495 경기 147 득점)
- 에스타니슬라우 바소라 (1946 - 58 / 윙 / 444 경기 179 득점)
- 구스타우 비오스카 (1950 - 58 / 중앙 수비수 / 255 경기 5 득점)
- 에두아르드 만촌 (1950 - 57 / 윙 / 254 경기 105 득점)
- 조아킴 브루게 헤라스 (1951 - 60 / 센터백 / 212 경기 1 득점)
- 지크프리트 그라시아 (1952 - 66 / 레프트백 / 536 경기 23 득점)
- 후스토 테하다 (1953 - 61 / 윙 / 271 경기 139 득점)
- 마르티 베르헤스 (1956-1966 / 하프백 / 438 경기 47 득점)
- 엔릭 겐사나 (1956 - 64 / 하프백 / 315 경기 25 득점)
- 페란 올리베라 (1956-69 / 중앙 수비수, 풀백 / 524 경기 1 득점)
- 로드리 (1958 - 63 / 중앙 수비수 / 237 경기)
- 살바도르 사두르니 (1961 - 76 / 골키퍼 / 500 경기)
- 엘라디오 실베스트레 (1962 - 72 / 라이트백 / 450 경기 15 득점)
- 주젭 마리아 푸스테 (1962 - 1972 / 미드필더 / 410 경기 119 득점)
- 카를레스 렉사치 (1965 - 81/ 윙 / 672 경기 221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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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르가 아닌 사람의 영입 추천의 역할이 컸거나, 시기상 보테르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바르셀로나가 픽하는 과정에서 보테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했을지에 대해 미지수이지만, 바르셀로나의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아래의 선수들 영입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라슬로 쿠발라 ( 1950-61 / 포워드 / 357 경기 281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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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시 산도르 (1958 - 66 / 포워드 / 240 경기 164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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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탄 치보르 (1958 - 61 / 포워드 / 93 경기 58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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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크루이프 (1973 - 78 / 포워드 / 231 경기 86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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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질병으로 은퇴하기까지 그가 바르셀로나 1군에 스카우트에 힘쓰고 있는 동안 바르셀로나는 7번의 라 리가 우승, 10번의 국왕컵 우승, 3번의 코파 에바 두아르테 우승, 2번의 라틴 컵 우승, 3번의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 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보테르가 은퇴한 이후에도 보테르가 스카우트한 선수들은 활동을 이어갔고, 오리올 토르트를 비롯한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 이후 라 마시아와 유소년 스카웃 & 교육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으니 보테르의 바르사에 끼친 영향력은 그가 팀에 머문 기간으로만 설명하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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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응원하던 구단을 위한 선수를 연구하며 약 40년을 헌신하다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스타가 영입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커리어를 마무리한 보테르,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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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이메일: 9cruyff14@gmail.com
인스타그램: paulino_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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