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네임: 노박 데죄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국적: 헝가리
출생일: 1939년 2월 3일
클럽 경력:
1955 좀바들리 포스타스
1956 - 1961 좀바들리 할라다스
1961 - 1972 페렌츠바로시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헝가리 국가대표 9경기)
1. 본격적인 탄생
1939년 2월 3일, 베네딕토 수도원의 성 게오르기우스 교회로 유명한 마을인 야크의 한 집에서 노박 데죄가 태어난다.
노박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기며 재능을 드러냈다. 처음에 중앙 공격수로 활약한 그는, 에지하사스랏도크의 1군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노박은 축구와 학업을 병행해 15살에 좀바텔리 기계공대에 입학하여 탄식스 기숙사생이 되었다. 그러나 노박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컸기에 결국 학업을 놓고 본격적으로 축구에 인생을 투자하게 된다.
2. 새로운 자리 그러나 익숙한 자리
학교를 그만두고 좀바텔리의 우체국에서 일하다가, 한 시즌 뒤에 좀바텔리 포스타스와 계약하며 16살에 1부 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57년에 노박의 축구 인생의 변환점이 될만한 일이 일어난다. 포스타스의 좌측 수비 자리에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생기자 키스 가보르 감독이 노박을 좌측 수비로 기용한 것이었다.
좌측 수비에서 노박의 활약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좌측 수비의 베테랑인 마냥 노련하고 효율적인 판단을 보인 노박은 그 이후로 측면 수비수로 전향한다.
측면 수비에서의 훌륭한 활약으로 1959년엔 스위스를 상대로 교체출전하며 헝가리 국가대표까지 데뷔했다.
1960 올림픽에도 참가했는데, 인도와 페루, 덴마크를 상대로 출전해 우승을 항해 달렸으나, 끝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3. 페렌츠바로시에서
1961년에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페렌츠바로시로 이적한다. 사실 1960 올림픽 이전에도 이적제의가 있었으나, 올림픽 출전을 위해 1부에서 2부로 강등된 좀바텔리에서 활약하길 택했다.
MTK로 이적한 노박에게 큰 적응 시간은 필요 없었다. 금세 팀의 플레이와 동료들과의 유대감에 녹아든 우측 수비수가 되었고, 특히 메자로스 요제프 수석 코치는 선수들이 성장시키면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활약을 조성했다.
그 결과 페렌츠바로시는 1963, 1964 시즌에 헝가리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게다가 1963 시즌과 1965 시즌 인터시티페어스컵 결승에 올랐으며 그중 1965 시즌엔 유벤투스를 원정에서 잡아내며 우승을 달성했다.
이 시기에 전성기에 돌입하기 시작한 노박은 유로 1964에서 조국을 동메달로 이끌었다. 특히 동메달 결정전에선 프리킥과 페널티킥으로 멀티골을 기록했다. 덕분에 동료 베네 페렌츠와 함께 대회 베스트 XI로 선정됐다.
같은 해에 열린 도쿄 올림픽에선 헝가리의 주장을 맡으며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이 대회에서 헝가리는 5경기 22 득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으며 노박 또한 결승전에서 체코슬비키아를 상대로 좋은 크로스를 보내 베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헝가리의 우승을 처음 경험한 주장은, 결승전에 사용된 공을 동료 선수들 몰래 챙겨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월드컵까지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노박은 국가대표로서 출전했을 때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1966 월드컵 명단에 들지 못한다. 헝가리는 이 대회 8강에서 레프 야신이 이끄는 소련을 상대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다시 돌아와 노박에 대해 얘기하자면, 메자로스 코치가 팀을 떠났으며 월드컵 명단에 떨어졌음에도 페렌츠바로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1966 시즌엔 팀을 헝가리컵 준우승과 유러피언컵 8강 진출로, 1967 시즌엔 팀을 헝가리 1부 리그 우승으로, 1968 시즌엔 팀을 헝가리 1부 리그 우승과 인터시티페어스컵 준우승으로 견인했다.
그리고 1968 올림픽에선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었고, 4강에서 일본을 상대로 두 골을 기록하는 등 훌륭한 기량을 보이며 조국을 올림픽 2연패로 이끌었다.
게다가 1968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치러지는 팀 브라질 VS FIFA 팀 월드의 기자단 투표에서 팀 월드에 선정되며 제프 마이어, 보비 무어, 자친토 파케티, 드라간 자이치, 볼프강 오베라스, 조지 베스트 등의 선수들과 세계를 대표하는 팀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헝가리 국가대표팀이 1970 월드컵 예선 탈락하는 일이 벌어진 이후, 헝가리의 축구 경쟁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물론 노박은 이 시기에 국가대표로 기용되지 않았기에 노박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으나, 노박 또한 이 시기에 기량의 하락을 겪는다.
1972 시즌엔 33살의 나이에 페렌츠바로시의 UEFA 컵 준우승과 헝가리 컵 우승에 공헌했고, 이 시즌을 끝으로 노박 데죄는 페렌츠바로시 팬들의 존경을 받으며 은퇴를 선언한다.
노박 데죄는 통산 득점이 100점이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수비수로, 스트라이커 출신답게 킥력과 상대 키퍼의 심리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였다. 페렌츠바로시의 전담 페널티키커였는데 74번을 차서 단 5번 만을 실패했으니, 키퍼와의 심리전에서 아주 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커리어 통산 프리킥 득점이 27 득점인데 그중 16 득점이 골대로부터 30m 정도에서 성공시킨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실로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지닌 수비수였음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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