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타 데 호이

[풋볼리스타 데 호이] 잉글랜드 무대 최초의 아이리시 스타, 지미 던 - 下편

파울리노 하나 2024. 3. 10. 22:17

上편 -

2024.03.09 - [풋볼리스타 데 호이] - [풋볼리스타 데 호이] 잉글랜드 무대 최초의 아이리시 스타, 지미 던 - 上편



 

풀네임: 제임스 던

포지션: 센터 포워드
국적: 아일랜드
출생일: 1905년 3월 9일

 

클럽경력:

1923 - 1925 샴록 로버스

1925 - 1926 뉴브라이튼

1926 - 1934 셰필드 유나이티드

1934 - 1936 아스날

1936 - 1937 사우샘프턴

1937 - 1942 샴록 로버스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국가대표 28경기)



 

1929-30 시즌이야말로 지미 던 축구인생의 최대 변환점이자, 아일랜드산 득점 기계의 작동 시점이었다.

 

1929년 9월 7일에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무승부를 이끌었으며, 1930년 해가 밝은 후엔 웨스트햄전과 레스터전에서 연속 4 득점을 기록하더니 블랙번을 상대로 또다시 해트트릭을 퍼붓는 등 파격적인 득점행진을 보인다.

 

시즌 종료 시점에서 던의 리그 득점 기록은 39경기 36 득점이었다.

 

 

방출 명단까지 올랐던 선수는 팀내 최다 득점자로서 시즌을 마쳤고, 그의 골들은 강등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득점 비율 지표에서 번리를 앞서도록 만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던은 아일랜드 국가대표로도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다음 시즌인 1931-32 시즌엔 리그 41경기에서 41 득점이란 경이로운 득점력을 과시했으며, 시즌 총스탯은 47경기 50 득점으로, 경기당 1골의 고지마저도 뚫어버렸다.

 

 

 

또한 이 시기에 북아일랜드 국가대표에서도 4경기에 출전해 4 득점을 기록하는 등 득점과 관련된 지표에서 커리어 정점을 찍는다.

 

이후에도 셰필드 유나이티드 내에서 압도적인 득점 지분을 차지하며, 1929-30 시즌부터 1932-33 시즌까지 연속으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지미 던의 득점 행진과 득점 방식은 풋볼리그의 다른 구단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러 구단에서 지미 던 영입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그중 하나가 떠오르는 북런던의 패자, 아스날이었다.

 

아스날

 

사실 아스날의 지미 던 영입 시도는 하버트 채프먼이 팀을 이끌던 1932년에 시작되었는데, 이 때 셰필드에게 지미 던에 대해 £10,000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었다.

하지만 이후 유나이티드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지자, 지미 던은 £8,250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시즌 도중에 아스날로 떠났다. 그리고 지미 던이 떠난 셰필드는 결국 이 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된다.

 

 

지미 던은 하버트 채프먼 때부터 아스날에게 구애받긴 했으나, 이적한지 얼마 안 되어 하버트 채프먼이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해버려 아스날에서의 대부분의 기간을 조 쇼와 조지 앨리슨의 아래에서 보내게 됐다.

 

하버트 채프먼의 장례식

 

아스날에서의 첫 시즌인 1933-34 시즌, 지미 던은 리그 21경기 9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선수 커리어 전반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풋볼 리그의 우승이란 타이틀을 얻는다.

 

하지만 이 다음 시즌에 아스날의 전설로 기억될 테드 드레이크라는 센터포워드의 영입과 본인의 기량하락으로 인해 아스날에서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벤치를 달구게 되었고 언론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비싼 후보선수'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테드 드레이크

 

자신의 기량 하락을 인지한 던은 2부 리그의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다. 신체의 최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센터포워드였던 던은 1936-37 시즌 리그 36경기에서 14 득점이란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잔류에 이바지했고,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요청까지 받았다.

 

그러나 어느덧 던의 나이는 30대를 넘어서있었고, 결국엔 사우스햄튼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국 친정팀인 샴록 로버스의 품으로 돌아가길 택한다.

 

샴록 로버스에서 선수겸 감독으로 활약하게 된 지미 던은 자신의 아일랜드 축구 커리어에 아일랜드 리그 우승 2회, 린스터 시니어컵 우승, FAI컵 우승, 아일랜드 리그 실드 우승 2회를 추가했고 1942년에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축구화를 벗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