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치오 모먼트

[칼치오 모먼트] 판타지스타, 이루어지지 못한 로맨티스트

파울리노 하나 2022. 12. 8. 01:57

칼치오 모먼트
- 블로거가 인상 깊게 본 축구 관련 사진들을 중심으로 그 속에 얽혀있는 이야깃거리들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는 시간입니다.


1991년 4월 7일, 피렌체 원정을 떠난 유벤투스.

전반 막판에 피오렌티나가 페널티 아크 안에서 좋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디에고 푸세르가 처리한 프리킥이 유벤투스의 골대를 강타하고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가며 피오렌티나가 리드를 가져갔다.

그러나 후반전 초반, 피렌체 관중들의 집중적인 야유를 받던 '유벤투스의 10번'이 왼쪽에서 피오렌티나 선수 2명을 제치고 박스 안으로 들어갔고 피오렌티나의 수비수 스테파노 살바토리가 반칙을 범하며 유벤투스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유벤투스의 페널티 킥 전담은 그 10번의 선수였으며 이번 시즌에만 패널티 킥 5개를 성공 중이었다.

그런데, 10번 선수가 어째선지 페널티 킥을 처리하길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시즌 페널티 킥 전담이었던 루이지 데 아고스티니가 유벤투스의 페널티 킥을 찼고 피오렌티나의 골키퍼 지안마테오 마레기니가 이를 선방해내며 유벤투스는 피오렌티나에게 패배한다.

10번 선수의 기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기내내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야유를 받던 그는 후반전 중반에 안젤로 알레시오와 교체되었는데, 터치라인 밖을 통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홈팬들에게 온갖 야유를 받았고 어떤 팬들은 그에게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욕설과 물건 세례를 받으며 터널로 향하던 도중 그의 앞에 피오렌티나 스카프가 떨어졌다.
역시나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그에게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비안코네리의 10번은 잔디에 떨어진 비올라 스카프를 그냥 둘 수 없었다는 듯 주웠다. 그 순간 경기장의 분위기는 바뀌었고 경기 내내 야유를 받던 그에게 홈팬들은 박수세례를 보냈다. 그는 팬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유유히 유벤투스의 벤치가 아닌 터널을 향해 걸어갔고 피치에서 벗어났다.


이 경기결과로 유벤투스는 다음 시즌 UEFA컵 진출권을 잃게 되었으며, 피오렌티나는 강등을 피할 수 있었다.

중요 경기에서 10번의 등번호를 달고도 페널티 킥을 거부해 결과적으로 팀에게 패배를 안기며, 라이벌 구단인 피오렌티나의 서포터들에게 경의를 표한 이 선수는 그 시절 세계 최고 이적료의 선수였으며, 후에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가 된다.



로베르토 바조



전방 십자인대와
반월상연골이 파열되는 선수생활이 염려되는 대형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적 협상을 진행했다.

첫 시즌을 통째로 재활에 투자했으나 복귀 이후 다시 한번 부상이 재발했다. 이번에도 7개월이란 긴 기다림이 필요했지만 그를 믿었다.

1990 월드컵 맹활약 후 은혜를 갚나 싶었으나, 구단의 재정 악화로 그에겐 이적이란 선택지밖에 없었다.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로베르토 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