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치오 모먼트
- 블로거가 인상 깊게 본 축구 관련 사진들을 중심으로 그 속에 얽혀있는 이야깃거리들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는 시간입니다.
1975년 11월 20일, 결장암과 동맥경화, 파킨슨병, 심장마비, 혼수상태, 위출혈, 요독증, 급성 복막염 등으로 고통받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학계와 문화 및 예술계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는데, 특히 카탈루냐 지방의 이들은 그들의 언어까지 금지당하며 탄압에 크게 시달렸었다.
독재자의 사후, 카탈루냐는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바람을 일으키려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시민 축구 구단이 있었으니. 바로 FC 바르셀로나였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회장이었던 아구스티 몬탈 코스타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는데, 아직 프랑코가 살아있던 1975년 7월 21일에 구단의 공식언어를 카탈루냐어로 되돌렸으며, 깜 노우에서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깃인 세녜라를 내거는 것을 막지 않는 등 여러모로 탄압에 시달리던 카탈란에게 그들의 카탈루냐 정서를 표출할 수 있는 일종의 안식처를 만들어준 인물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던 코스타는 프랑코의 사후에 카탈루냐의 대표격인 바르셀로나의 주장이 카탈루냐 정서와 사랑을 좀 더 드러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주장이 카탈란을 이끌어 주길 바랐다.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카란과 스페인을 민주주의로 이끄는, 그런 주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그 역할에 더할나위없는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1976년 2월 1일, 깜 노우에서 아틀레틱 클루브를 맞이한 바르셀로나.
킥오프 전, 양 팀의 주장과 심판진이 인사를 나누는 상황에서 바르셀로나 주장의 착장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바르셀로나의 주장은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였는데, 그의 팔 엔 본래 있어야 할 백색 완장이 아닌 세녜라가 감겨 있었다.
그는 몸에서 카탈루냐의 피가 흐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카탈란이 겪는 부당함에 개탄하고, 분노하며, 맞서려 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애초에 카탈란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네덜란드인은 그날 경기에서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투지로 잔디 위를 끊임없이 누볐고, 팀을 2:1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세녜라 주장완장 역사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훗날 스페인의 축구팬들에게 살바도르(El Salvador, 구세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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