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발 잡담

[부트발 잡담] 차비 에르난데스 - 합당한 경질인가?

파울리노 하나 2024. 5. 19. 16:23


지난 17일, 바르셀로나의 이사회가 차비 에르난데스의 경질로 기울고 있다는 소식이 다양한 언론사들을 통해 보도되었다.

크라이프 - 과르디올라를 잇는 바르셀로나 브레인 선수 출신 명장의 계보라는 기대를 업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차비는 지난 2022-23 시즌에 라 리가 트로피를 4년 만에 바르셀로나로 가져오긴 했으나 선수들의 기량과 변수에 지나치게 기대고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인다고 지적받았으며, 대륙 대항전에서 유독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 때문에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진 못했다.

 
차비가 떠난다는 소식은 이걸로 두 번째다. 지난 비야레알전(1월 28일)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를 거둔 후에도 차비 감독은 성적부진을 이유로 바르셀로나를 위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임할 것을 선언했었다. 이후 조안 라포르타 회장을 비롯한 이사회와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차비의 사임을 번복시키기 위해 나섰으나 차비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으며 사임에 대한 의지가 완고해 번복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임 선언 이후 차비 감독은 13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갔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파리 생제르망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팀이 조금씩 성과를 올리자 현지의 팬들과 이사회들은 다시 차비 감독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고 데쿠 스포츠 디렉터 이사가 차비에게 잔류할 것을 제안하자, 자존감이 오를 대로 올라와 있던 차비는 결국 바르셀로나 잔류를 택했다.
 

 
차비가 이런 성과를 거두는 데에 있어선 파우 쿠바르시의 발견과 등 부상으로 11월 중순부터 이탈한 테어슈테겐의 복귀가 결정적이었다.
 

 
테어슈테겐은 11월 중순부터 부상으로 이탈했는데, 그를 대체한 이냐키 페냐는 선방에 있어선 분명 재능이 보였으나, 테어슈테겐에 비해 수비진과의 의사소통과 볼 플레잉에 있어서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리고 페냐의 이런 약점은 기존 수비진의 아라우호가 지니고 있던 약점과 겹쳐졌고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힘들 정도로 불안한 후방의 모습을 보여줬다.
 

 
본래 아라우호의 고질적인 단점인 공격전개 능력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새롭게 영입한 이니고 마르티네스가 어느 정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마르티네스마저 고질적인 유리몸 기질을 떨쳐내지 못하며 결장이 잦아지니 후방자원의 볼 전개 능력을 전제로 경기를 구상하는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은 자연스레 바닥을 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비에게 동아줄을 내려준 인재가 파우 쿠바르시다. 이번 시즌 첫 출전 때의 쿠바르시는 16살에 불과한 나이였으나 아라우호와 페냐의 아쉬운 볼 소유 능력과 전개 능력을 해소해 줄 만한 패스 앤 무브 능력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탁월한 구질의 전환 롱킥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쿠바르시는 꾸준히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스쿼드에 자리 잡았고, 이후 2월 초에 테어슈테겐이 부상에서 복귀하자 후방에서의 볼 플레잉과 질 높은 패스를 구사하는 쿠바르시와 테어슈테겐을 보유하게 된 차비와 바르셀로나는 이들의 볼 소유 능력과 패스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환과 다이렉트 플레이를 통해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번 시즌 라민 야말과 페르민 로페스에 이어 쿠바르시라는 새로운 라 마시아 출신 재능을 발견한 것이 차비의 잔류 선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팬들과 구단이 생각하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서 차비의 최대 장점은 바르셀로나의 철학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시즌 차비는 바르셀로나의 시스템으로 대표적인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서 야말과 로페스, 쿠바르시라는,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만한 재목을 얻었다.
 

 
이는 차비의 바르셀로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팬들과 구단에게 보여준 대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팬들과 구단에게 있어서 차비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차비가 사임 번복을 밝힌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차비의 경질설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보도되는 내용에 따르면 차비가 알메리아전 전의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바르셀로나의 재정이 사고 싶은 선수를 살 수 있었던 20년과는 달리 힘든 상황임을 알아야 하며, 경제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유럽 등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했는데
 
사임 번복을 위한 라포르타와의 면담 때는 말하지 않은 스쿼드에 대한 불만을 기자들 앞에서 들어냈으며, 구단 내부의 재정에 대해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힌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특히, 레버까지 당기면서 차비를 지원하기 위해 애썼음에도 차비가 스쿼드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 것에 대해 수뇌부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물론 내부 사정을 기자들 앞에서 드러낸 차비의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구단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덕에 큰 지지를 받던 차비였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난 돌발행동은 차비의 위신에 있어서 큰 리스크를 동반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재정적인 상태가 이전에 비해 안 좋은 상황이며 경쟁할만한 체급의 상대들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것은 바르셀로나의 팬들 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를 즐기는 대부분의 팬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던 내용이다.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상 차비가 구단의 재정에 대해 끄집어낸 것은 구단의 지원에 대한 불만을 표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단을 위해 팬들에게 양해와 시간을 구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필자는 다른 이유면 몰라도 이 인터뷰가 팬들로부터 차비의 경질을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되지 못하며 지금 시점에서 차비를 경질시키기 위해선 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힘든 경질 사유는 이들을 포함한 감독 후보들이 바르셀로나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디메리트로 작용할 것이 뻔하며 이 시점에서 차비를 경질한다 해도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을 만한 인물을 찾고 데려오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차비가 사임 번복을 하기 전에 바르셀로나의 차기 감독으로 연결되던 한지 플릭과 B팀 감독 라파 마르케스를 생각해 봤을 때, 한지 플릭은 바르셀로나가 레이스에 다시 끼어들어 바이에른 뮌헨과 경쟁해야 하며 차비에 비해 바르사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마르케스의 경우는 차비보다도 프로무대에서 지도자로서 이룬 성과와 기간이 부족한 상태다.
 

 
팬들은 '수뇌부의 말 잘 듣는 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바르셀로나가 팬들의 분노를 부르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차비의 경질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확실한 명분을 찾아오거나 믿을만한 후계자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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