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르 무니아인. 아마 스페인 축구와 라 리가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그 선수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근 20년간 함께한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동행을 마칠 것임이 지난 24일에 공식화되었다.
무니아인은 아틀레틱 클루브에게 있어서 특별하고도 이질적인 선수였다.
아틀레틱 클루브 구단의 특징은 선수들이 전체적인 에너지 레벨이 높고 경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사이즈와 힘을 지니고 있는 선수를 다수 배출, 보유하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점에서 무니아인은 이레귤러다. 키도 작고 체형도 왜소해, 경합에 관한 재능에서 타고난 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레귤러' 무니아인은 아틀레틱에서 중추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다른 아틀레틱 클루브의 선수들에게 부족했던 섬세함이란 재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니아인은 공을 다루는 센스와 번뜩이는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재능면에선 라 리가 내에서도 돋보이는 선수였다.
그리고 무니아인의 이런 재능은 아틀레틱 클루브가 선수들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더욱 효과적이고 다채롭게 활용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특히 2021-22 시즌엔 무니아인 개인의 기량이 정점에 달해있기도 했으나 무니아인의 특장점인 정확한 전환 패스와 수비와 골키퍼 사이의 절묘한 공간으로 향하는 얼리 크로스와 높은 정밀도의 세트피스 킥 처리 능력(물론 직접 골문을 노리기보단 크로스나 패스로 연결했을 때에 더 효과적이긴 했으나)이
빠른 전환을 통한 역습과 치밀한 세트피스 공략을 내세운 마르셀리노 감독의 전술과 잘 맞아떨어져 리가 최고의 찬스 메이커로서 활약하며 선수 본인의 커리어의 정점을 갱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어지는 시즌에 무니아인의 굳건할 것만 같았던 입지는 무너지게 된다.
2021-22 시즌 종료 후 마르셀리노 감독은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났고, 아틀레틱 클루브의 새 지휘봉은 이미 수차례 아틀레틱 클루브와 함께한 연이 있는 에르네스토 발베르데가 쥐게 되었다.
발베르데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굉장히 빠르게 팀에 자신의 축구색을 입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발베르데가 곧바로 무니아인의 입지를 줄였던 것은 아니다.
시즌 초반에는 이케르 무니아인의 창의적인 재능을 높게 평가해 높은 에너지 레벨과 많은 활동량과 압박을 요구하는 자신의 축구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무니아인을 공격형 미드필더나 폴스 나인에 가까운, 팀 공격의 핵심적인 역할로 기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니아인 또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공격적인 부분에서 주어진 역할에서 탁월한 센스를 보였다. 그렇게 무니아인과 아틀레틱 클루브는 시즌 초반부터 발베르데 감독의 색채를 성공적으로 이식받았다고 평가받을만한 경기력을 펼쳤다.
그러나 경기력에 비해 팀의 성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마요르카와 세비야, 헤타페 등의 팀을 상대로 압도하는 경기력을 펼쳤으나 떨어지는 득점 전환율로 전부 무승부에 그쳤고, 이런 결과는 장기적인 리그 경쟁에서 높은 결과를 거두길 바란 발베르데에게 과정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다.
바르셀로나에선 리오넬 메시에게 자유도를 주면 주변 동료의 높은 퀄리티와 메시 본인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결과를 거두어낼 수 있었으나, 아틀레틱은 그 정도 퀄리티의 선수들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무니아인도 메시에 비할 수준의 천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축구의 예외적 존재인 무니아인의 입지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때 즈음에 마침 무니아인이 좌측 외복사근으로 스쿼드에 결장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니아인의 이 부상 이후로 무니아인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체력적으로나 사이즈적으로나 압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니아인 대신에 높은 압박 영향력과 수비력을 갖추고 있는 오이안 산세트를 팀의 중심으로 기용하게 된다.
산세트는 발베르데의 축구에 부흥함과 동시에 개인의 역량 또한 만개하기 시작했으며 발베르데는 아틀레틱의 축구에 점점 더 지공의 요소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속공에서의 얼리 크로스가 주 무기인 무니아인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물론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발상은 여전히 무니아인이 산세트에 비해 뛰어났으나 이마저도 경기를 많이 뛰질 않으니 감각이 떨어져 갔고, 심지어 니코 윌리엄스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며 아틀레틱 클루브에 창의성과 역동성을 안겨줄 수 있게 되자, 무니아인의 입지는 더더욱 바닥으로 치닫았다.
무니아인에겐 애석하게도 발베르데의 안목은 정확했다. 아틀레틱 클루브의 성적은 점점 더 좋아졌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성적으로의 증명과 유망주의 성장이 계속 이어지며 무니아인은 교체 출전조차 얼마 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다른 선수였다면 리그 최고 수준이었던 자신이 벤치워머 신세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팀의 분위기를 해칠만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케르 무니아인은 달랐다. 그는 진정한 로스 레오네스였다. 그는 경기에 못 뛸지라도 벤치에서도 열성적으로 성심성의껏 선수들을 서포트했다.
그리고 깊디깊은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이번 국왕컵이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것은 아틀레틱 클루브를 위한 자신의 위치가 벤치라면 그 위치에서 조차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구단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과 사랑이었다.
무니아인의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이별이 공식화된 이후, 여러 언론과 미디어로부터 무니아인이 스페인 내 팀으로의 이적을 원치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현재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동행을 멈추지만 이케르 무니아인의 무조건적 사랑은 영원토록 아우토반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이메일: 9cruyff14@gmail.com
인스타그램: paulino_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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