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발 잡담

[부트발 잡담] 초라한 춤

파울리노 하나 2024. 7. 8. 01:16

8강이 마무리되고 이제 준결승을 앞두고 있는 한 여름의 축구 축제 유로 2024.

 

 

16강이 객관적 전력으로 승패를 예상하기 쉬운 대진이었던 반면 8강부턴 유럽 상위권들끼리의 승부이기 때문에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대진이 만들어졌고, 실제로도 8강은 참가 팀들에게 어려운 경기였다. 골이 터지지 않은 포르투갈 대 프랑스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에서 75분 이후에 역전골이나 동점골이 터졌으며 4경기 중 3 경기가 후반전을 갔다. 게다가  2 경기는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갈라야 했다.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끈 경기는 독일 대 스페인과 프랑스 대 포르투갈이었다. 두 경기는 우승후보들의 접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독일의 토니 크로스의 마지막 대회라는 라스트 댄스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라스트 댄스는 우리가 생각하거나 바란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독일은 국가대표 은퇴에서 복귀한 토니 크로스의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조별 리그에서 매우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유로를 통해 설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8강에서 스페인을 만나게 되었다.

 

 

대회 전승을 이어가고 있던 스페인은 독일 입장에선 가장 껄끄러운 상대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높은 위치에서의 강도 높은 압박과 짧은 패스와 선수들의 포지셔닝을 통해 전진하는 바르셀로나식 축구의 몰락을 이끄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개최국 독일이었기에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긴 어려웠다.

2012-13, 2019-20 챔피언스 리그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바르셀로나 시대를 종언한 바이언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기였던 독일 대 스페인의 결과는 연장접전 끝의 1-2 독일의 패배였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유럽의 탑 레벨에 있다고 평가받던 크로스였으나 이 경기에선 그 명성에는 못 미치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는데, 근래 시즌에 수비력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던 크로스였으나 페드리를 부상으로 이끈 위협적인 태클과 라민 야말의 발목을 밟아버리는 모습은 은퇴할 시기에 이르러서도 고질적인 기동력과 수비적 단점이 완전히 고쳐지진 않았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과 프랑스는 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진을 보유한 팀이지만 그 덕을 기대만큼 보고 있진 못했다. 포르투갈은 노익장들의 명성과 경험, 재능을 믿었고, 수비에는 케플레르 페페, 공격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내세웠으나 페페가 수비진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낸 반면에 호날두는 공격진에서 영향력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프랑스는 유럽 최고 수준의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으나, 플레이메이커 앙투안 그리즈만과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킬리안 음바페가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공격작업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수 명단에 비해 아쉬운 경기를 펼치던 두 국가 간 맞대결. 결과는 승부차기 접전 끝의 프랑스의 승리였다.

 


이번 대회가 자신의 마지막 유로가 될 것이라 선언했던 호날두는 대회 내내 이름에 걸맞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8강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며 눈물을 흘리며 후배들에게 격려받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8강에서도 떨어지는 경기 영향력을 보이며 호날두는 마지막 유로에서조차 자신의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부진이란 자신의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아직까지 호날두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출전여부가 확실하진 않으나, 리오넬 메시가 코파와 월드컵을 들어 올리는 데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비교에서 약점이었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을 충족시킨 반면에, 40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한 호날두는 역사에 남을 원맨쇼를 보여주며 포르투갈을 1966 월드컵 3위로 이끈 에우제비우와의 비교에서 국가대표 경력에서 끝내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경력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토니 크로스와 호날두가 8강에서 아쉬웠듯이 남미에서 치뤄지고 있는 코파 아메리카의 8강에서 메시도 승부차기를 실축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베테랑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빛을 바래가고 있는듯 하다.

 

그럼에도 인터내셔널 매치에서 팀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베테랑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클럽보다 합을 맞출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팀을 하나로 묶어줄 시간을 아낄 수 있으며, 자라나는 선수들에겐 우상과 함께 뛰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승부의 세계는 항상 차갑다. 그러나 이들이 이뤄낸 승리들은 우리에게 뜨겁게 기억되고 있다.

 

그 뜨거운 기억들이 얽히고 묶여 그들의 마지막 미련을 불태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설령 승부의 세계를 뜨겁게 만들기엔 역부족일지라도

그들의 미련이 완전 연소하길 바란다.

 

그 재가 새 시대의 거름이 되길 바란다.

 

 


 

글: 파울리노 하나 (정원길)
이메일: 9cruyff14@gmail.com
인스타그램: paulino_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