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타 데 호이

[풋볼리스타 데 호이] 3월 25일 메시 이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던 아르헨티나인, 에밀리 사지-바르바

파울리노 하나 2023. 3. 25. 20:58


풀네임: 에밀리 사지-바르바

포지션: 포워드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일: 1900년 3월 25일

클럽 경력:
1915 - 193? 바르셀로나

통산 경기: 약 455경기



1900년 3월 25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에밀리오 사지 리냔이 태어난다. 리냔의 아버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저명한 카탈루냐 출신의 성악가이자 지휘자였으며 이 때문에 아들인 리냔은 후에 사람들에게 리냔이 아닌 사지-바르바라 주로 불렸으며 3살이 되어서야 카탈루냐로 올 수 있었다.

사기 리냔의 아버지, 에밀리 사기 바르바

(이 문단부터 리냔을 사지-바르바라고 서술함.)

사지-바르바는 카탈루냐에 정착하며 코레지오 콘달, 보나노바, FC 카탈루냐에서 유스 경력을 보냈다. 이 시기에 주젭 사미티에르와 살바도르 달리 등 후에 유명해질 인물과 친분을 쌓게 된다.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품, 기억의 지속

1915년엔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던 사지-바르바는 16살에 1군에 콜업되었으며, 17살에 1군 경기 데뷔를 치른다. 1918-19 시즌에 캄페오나트 데 카탈루냐를 우승했지만 당대의 여러 선수들이 그랬듯, 축구는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에 사기-바르바는 우승 후에 바르셀로나를 떠나 타라사의 산업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922년에 사지-바르바가 바르셀로나에 복귀함으로 파울리노 알칸타라, 주젭 사미티에르, 플라트코 페렌츠 등 의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잭 그린웰 감독 체제에서 하나로 모였고 이들은 잭 그린웰이 떠난 이후에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전성기를 연다.

 

사지-바르바는 상기한 선수들과 앙헬 아로차, 호세 카를로스 카스티요, 비센테 피에라, 주젭 사스트레 페르시바등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캄피오나트 데 카탈루냐 우승 8회(1921-22, 1923-24, 1924-25, 1925-26, 1926-27, 1927-28, 1929-30, 1930-31, 1931-32),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 (1922, 1925, 1926, 1928), 초대 라 리가 우승의 영광을 바르셀로나에게 선물한다.

 

스페인 국가대표에서도 파울리노 알칸타라, 리카르도 사모라 등 바르셀로나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과 활약했으며

아스투리아스 왕자 컵 우승 2회(1923-24, 1926)를 이루었으며

 

사지-바르바가 30대가 되고 바르셀로나가 세대교체의 때를 맞이함으로 인해 1936년에 축구 선수를 은퇴하게 된다.


에밀리 사지-바르바는 질 좋은 슈팅과 크로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포워드였으며, 커리어 통산 페널티 킥 성공률 100%를 기록한 선수였다. 경기 중에 반칙을 잘 저지르지 않았으며 사생활이 모범적인, 신사적인 선수라 기억됐다.

파울리노 알칸타라, 주젭 사미티에르 등 과 함께 바르셀로나 구단 초기의 스타 중 하나였다. 팬들에게 우상(Idol)으로 여겨졌으며, 여러 칼럼리스트들이 그를 '센터의 마에스트로', 파울리노 알칸타라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선수'등의 극찬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