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타 데 호이

[풋볼리스타 데 호이] 3월 12일 엘 푸에르테, 라몬 무티스

파울리노 하나 2023. 3. 12. 15:40


풀네임: 라몬 알프레도 무티스

포지션: 센터 하프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일: 1899년 3월 12일

클럽 경력:
1918 - 1919 원더러스 

1920 - 1922 아틀란타

1923 - 1932 보카 주니어스

1936 - 1937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37 알마그로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1899년 3월 1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라몬 무티스가 태어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산업화와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남미의 프랑스'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무티스가 태어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 불리기 시작했다.

 

무티스는 1918년에 산티아고 원더러스에서 프로경력을 시작했다. 1년 뒤인 1920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근인 빌라 크레스포를 연고지로 하는 CA 아틀란타로 이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20 코파 데 오노르(Copa de Honor, 아르헨티나 챔피언과 우루과이 챔피언이 맡붙던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1923년엔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고지로 하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했고 1923, 1924 프리메라 디비시온(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그)과  1923, 1924 코파 이바르구렌(Copa Ibarguren,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그와 로사리오 리그 챔피언들끼리의 대회)을 우승한다. 경합을 즐기는 라몬 무티스와 우아한 수비수였던 루도비코 비도글리오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1925년엔 캄페오나토 수다메리카에서 국가대표 데뷔를 했고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다음 대회인 1926에선 동시대 남미 최강 팀이었던 우루과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뛰어난 공수 밸런스를 보유한 보카 주니어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어 1926, 1930, 1931 프리메라 디비시온을 우승한다.

1925년, 유럽을 투어하며 19경기 15승을 기록한 보카 주니어스 선수진

1930 초대 월드컵에선 첫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벤치에 자리했고 1926 캄페오나토 수다메리카에 이어 우루과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이후 33살에 축구 선수를 은퇴하지만 4년 뒤에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선수 복귀를 한 뒤 알마그로에서 감독 겸 선수 생활을 짧게 하고 완전히 축구화를 벗는다.


자신의 신장과 체격을 잘 활용하는 수비수로, 팬들에게서 요새나 성채라는 뜻의 "엘 푸에르테(El Fuerte)"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