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네임: 디노 조프
포지션: 골키퍼
국적: 이탈리아
출생일: 1942년 2월 28일
클럽 경력:
1961 - 1963 우디네세
1963 - 1967 만토바
1967 - 1972 나폴리
1972 - 1983 유벤투스
통산 경기: 약 754경기 (이탈리아 국가대표 약 112경기)
1. 성장기
1942년 2월 28일, 마리아노 델 프리울리의 한 농가에서 디노 조프가 태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클 선수인 파우스토 코피와 경보 선수였던 압돈 파미치를 우상으로 여길 정도로 다양한 운동에 관심이 있었다.
축구선수를 꿈꾸었으나,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아버지의 제안으로 축구선수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기계에 대한 공부와 축구를 병행하며 배웠다.
14살의 조프는 유벤투스와 인터밀란 등의 유소년팀에 입단을 시도했으나 160의 신장을 이유로 거절당했고, 지역 축구팀인 마리아네세의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게 된다. 조프의 조모는 조프에게 하루에 섭취하는 달걀을 8개로 늘릴 것을 권유했고 결과적으로 조프의 신장은 5년 동안 33cm 자랐다.
신장이 늘어난 조프는 1961년, 19세의 나이로 우디네세에 입단하며 시니어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첫 시즌엔 우디네세의 전설적인 골키퍼, 지안니 로마노가 주전으로 활약했고 조프는 단 4경기에 출전하기에 이르렀으며 불행하게도 팀은 강등되었다. 하지만 우디네세에서의 두번째 시즌부터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구단의 승격을 도왔다.
우디네세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이탈리아 23세 이하 대표팀에 소집되어 1963 지중해 게임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한다.
2. 두각을 드러내다
구단의 승격을 도왔음에도 우디네세의 방출 명단에 포함이 된 조프의 다음 행선지는 만토바였다.
만토바의 본래 1963-64시즌 계획은 조프와 함께 영입된 베테랑 골키퍼인 아틸리오 산타렐리를 주전으로 활용할 생각이었지만 산타렐리의 부상으로 인해 조프가 주전을 차지하며 활약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즌엔 팀이 세리에 A 최하위로 강등당하지만 우디네세 때와 마찬가지로 한 시즌만에 승격시키기 기도 했다.
조프의 이러한 활약은 이탈리아 상위권 구단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1967년 여름에 AC 밀란의 관심을 받나 싶었지만 밀란이 파비오 쿠디치니를 영입하는 바람에 결국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몬토바에 클라우디오 반도니와 1억 2천 리라를 남기며 나폴리로 이적한다. 1968년엔 성인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 된다. 유로 1968에서 데뷔해 엔리코 알베르토시를 밀어내고 바로 주전을 차지하며 조국을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좋은 활약은 나폴리에서도 이어졌고, 1971-72 시즌의 복사뼈 부상으로 인한 결장 기간을 제외하면 나폴리의 전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1970 월드컵에선 조국이 결승에서 브라질에게 1 - 4로 대패하는 순간까지 알베르토시에게 밀려 후보에 그쳤다.
3. 세계최고의 골리
나폴리에서의 성장으로 조프의 기량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급의 골리가 되었고 1972년 여름에 유벤투스로 이적하기에 이른다.
유벤투스에서의 첫 시즌부터 맹활약을 해 팀을 1972-73 시즌 세리에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성적으로 이끌었고, 1973 발롱도르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이은 2위를 기록했으며 본래라면 아약스가 치루었어야 하는 인터콘티넨탈 컵의 준우승을 운 좋게 차지하기도 했다.
1974 월드컵은 조프가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좋은 기억이 되진 못했다. 개막전부터 아이티를 상대로 승리는 했으나 엠마누엘 사논에게 실점을 하며 조프의 1,142분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며,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충격적인 탈락을 겪는다.
클럽 팀 복귀 이후에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인 디노 조프는 1975, 1976 발롱도르 후보에 들기도 했으며, 유벤투스에게 1974-75, 1976-77, 1977-78 세리에 우승과 1976-77 UEFA 컵 우승을 안겨준다.
1978 월드컵의 8강 조별리그에선 네덜란드에게 2-1 역전승을 내주며 3,4위 결정전에 진출했고 브라질에게 1-2로 패하며 4위에 만족해야했다. 38의 나이로 참가한 유로 1980에서도 3,4위 결정전에 진출하여 승부차기 끝에 체코에게 패하여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3,4위 결정전에서의 1 실점을 제외하고 이 대회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고 예선 포함 유로 최다분 무실점이라는 기록도 세운다. 이러한 성적이 반영되어 디노 조프는 1980 발롱도르 공동 11위에 오른다.
나이가 40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건재한 활약을 보여준 디노 조프는 1978-79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리그 전경기에 출장해 1980-81, 1981-82 시즌 세리에 우승을 다시 선물하며 유벤투스의 이탈리아 최강 구단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한다.
4. 절정, Monument
1982년, 40의 나이로 노장 중에서도 노장이 된 디노 조프였지만 이탈리아의 주장으로서 활약하며 염원하던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낸다.
특히 이 대회 2차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조프가 보여준 선방이 이탈리아를 준결승과 우승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드컵 최고령 우승자란 기록을 썼으며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1982 발롱도르에선 공동 8위를 기록했다.
1982-83 시즌, 41의 나이로 유벤투스에게 코파 이탈리아와 유로피언컵 준우승을 선물해 유종의 미를 거두며 긴시간 함께해 온 축구화를 벗는다.
디노 조프는 아주 충실한 골키퍼였다. 당대 최강의 볼 스토퍼로, 중거리슛에서 약점을 보이는 때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공중볼 처리와 뛰어난 반사 신경을 활용한 세이브에 능했다.
체력적으로도 뛰어나, 프로 생활 중 부상이 거의 없었기에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으며 수비라인과 팀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리더십 또한 갖추고 있었다.
그는 냉정한 골키퍼였으며 가장 힘들고 짜릿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에 대한 겸허함과 존경심으로 한발 물러설 줄 알았다.
브라질전이 끝나고 말 한마디 없이 다가와 뺨에 뽀뽀를 해줬다.
내겐 그 순간이 월드컵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었다.
- 엔조 베어조트(전 이탈리아 국가대표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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