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네임: 투라이 요제프
포지션: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국적: 헝가리
출생일: 1905년 3월 1일
클럽 경력:
- 1926 Röppentyű utcai SC
1926년 - 1933년 페렌츠바로시 TC
1933년 - 1940년 MTK 헝가리아 FC
1940년 간츠 TE
1941년 - 1942년 우이비데키 AC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
1. 페렌츠바로시
1905년 3월 1일, 헝가리 에게르에서 투라이 요제프가 태어난다. 지역축구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26년에 페렌츠바로시 TC로 이적한다 첫 시즌엔 파탁 미하이가 건재했던 탓에 후보로서 간간히 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그쳤지만, 파탁의 은퇴 후에 주전으로 자리 잡아 활약하기 시작한다. 코헛 빌모스, 타카치 요제프와 함께 공격진을 이루었다.
1927 시즌 헝가리 리그와 컵을 재패하며 더블을 달성했고, 투라이의 활약은 곧 헝가리 국가대표팀 데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듬해 1928 시즌에도 더블을 해냈으며, 미트로파 컵 결승에 진출해 SK 라피트 빈을 상대로 1차전 7-1 승리, 2차전 3-5 패배로 합산 스코어 10-6으로 빈을 박살 내며 우승하는 데에 공헌한다.
이후 톨디 게자와 탄저 미하이가 추가로 페렌츠바로시에 영입되며 투레이와 함께 공격진을 이루었고 1932년 헝가리 리그에서 총 105 득점을 기록하며 22경기 전승우승을 달성한다.
그리고 1933년에 페렌츠바로시의 라이벌 구단인 MTK 부다페스트로 이적했다.
2. 부다페스트와 월드컵
하지만 부다페스트엔 체 라슬로라는 뛰어난 포워드가 있었고, 투라이는 센터 하프(현재의 3선 미드필더 정도)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했다. 그러나 포지션 변경 이후의 투라이는 헝가리 대표팀에 중용되지 않았고 1934 월드컵에서 대표팀 명단에는 들었으나 투라이는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헝가리는 8강에서 탈락한다. 투라이는 1935년부터 다시 기용되기 시작했다.
MTK에서 1936, 1937 헝가리 리그를 연패했고 1938 월드컵에선 33살의 노장이었지만 주전으로 전경기에서 활약하며 헝가리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하짐만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상대하는 헝가리가 전술적 변화를 위해 요제프 투라이가 아닌 슈츠 죄르지를 기용했고 결과는 헝가리의 2-4 패배였다. 이 월드컵 이후 투라이는 대표팀 은퇴 수순을 밟았다.
1940년,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MTK가 해체되었고 간츠 TE와 우이비데키 AC를 거치고 축구화를 벗는다.
투라이 요제프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찬스메이킹과 득점력에 강점이 있던 선수였고 점프력이 뛰어나 공중볼 경합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다페스트로 이적 후엔 센터하프 위치에서 활약하며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여담이지만 훤칠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제빵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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