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지도자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 중 제일은 누구일까? 아마 라이트 팬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현역 감독으로 활약 중인 카를로 안첼로티일 것이다.
그렇다면 안첼로티 이외의 감독 중에서도 이탈리아와 세계 축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감독은 누가 있을까?
내 머릿속엔 넷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 중 하나는 지나치게 공격 중심적인 축구에서 수비를 고려하기 시작한 혁명가였으며, 하나는 이탈리아식 축구의 방향을 잡아준 인도자였고, 하나는 이탈리아의 보수적인 성향에 반발하는 진보적 괴짜 철학가였으며, 또 하나는 전술적 대처능력의 유연성으로 이탈리아식 축구의 전형을 보여준 전술가였다.
네레오 로코
네레오 로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카테나치오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카테나치오의 시작점은 사실, 로코 감독보단 칼 라판 감독에 가깝다. 1942년에 '유럽 약체' 스위스 대표팀에 부임한 라판은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높은 성적을 거두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수비적인 축구를 고안해 내게 되는데, 그것이 카테나치오의 시작점이다.
라판 감독은 기존의 1-2-3-5 피라미드 대형에서 센터 하프 백의 양 측면에 있는 윙 하프 백을 풀백의 바깥쪽에 배치함으로, 본래 공수의 연결점 역할을 하던 윙 하프에게 상대의 측면 공격 저지를 지시했다.
윙 하프의 측면 수비 가담은 측면 봉쇄에 효과를 발휘했으나, 센터 하프에게 큰 부담이었다. 피라미드 1-2-3-5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수비 시에 상대의 윙은 윙 하프로 봉쇄하고 상대의 센터 포워드는 두 풀백으로 봉쇄할 수 있었으나, 상대의 인사이드 포워드 둘을 센터 하프 혼자서 수비해 내긴 벅찼기 때문이었다.
또한 수비 상황뿐만 아니라 공격 전개 시에도 중원에 홀로 있는 센터 하프에게 공수 연결고리 역할의 부담이 커졌다. 그렇기에 라판은 메토도식으로 인사이드 포워드를 공격진에서 내려 중원에 가담시켜 센터 하프의 부담을 덜어냈다.
그리고 풀백 하나가 상대 센터 포워드를 대인수비할 시, 마크할 상대가 없는 잉여 자원 풀백이 생기는 것을 보고, 풀백 중 하나를 공간 커버용으로 최후방에 배치했다. 이 자리가 바로 '베로우어'로, 후대에 '리베로'로 불리게 되는 포지션의 시초였다.
칼 라판은 기량이 정상급이 아닌 선수들로도 높은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들을 후방 배치 시키며 수비를 탄탄하게 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라판의 이런 축구 철학에 동의함과 동시에 정상급의 선수들을 통해 재해석한 이가 바로, 네레오 로코다.
로코는 하위 팀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해, 트리에스티나와 파도바에서 수비적인 축구를 통해 높은 성적을 거뒀고, 주세페 비아니 감독(전임 감독인 비아니 감독 또한 수비적인 축구를 숭배하던 인물이었는데, 라판의 대형을 애용했으며 로코에게 베로우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이었다.)의 건강 문제 때문에 새 감독을 구해야 했던 AC 밀란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AC 밀란은 네레오 레코의 감독 생활의 커다란 변환점 중 하나가 되었다. AC 밀란은 빅클럽이었기 때문이다.
파도바와 트리에스티나에서 로코가 '지루한 수비 축구를 구사했던 이유는 개인기량이 강팀에 비해 떨어지는 선수들로 가장 효율적으로 성적을 거두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C밀란은 그동안 그가 맡아봤던 팀과는 달랐다. 밀란은 개인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결코 아니었다. 수비에는 체사레 말디니와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라는 지능과 신체능력을 모두 겸비한 방패가 있었으며, 공격에는 지안니 리베라와 호세 알타피니라는 재능 넘치는 천재들이 있는 빅클럽이었다.
로코는 이 호화 멤버들에게 하위 팀에서 하던 축구를 입히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안니 리베라를 비롯한 공격진의 수비가담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함으로, 수비를 중시하던 이전의 수동적인 전술보다 수비와 공격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안니 리베라의 개인기와 패스를 필두로 전개되는 그들의 역습은 축구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로코의 사고방식은 카테나치오를 숭배하던 이들 중에선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개방적인 태도는 피치 위에서 벌어지는 전술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선구자적 면모는 코칭 스타일에도 나타난다. 로코는 선수들을 엄하게 다루면서도 인격과 의견을 존중했고, 유러피언컵 결승을 앞두고 선수단 앞에서 직접 개그를 펼치며 긴장된 분위기를 녹여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적인 코칭에서 벗어난 임기응변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승리에 대한 효율을 추구했으나, 결코 수비만을 숭배하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임기응변 능력도 그의 그러한 태도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네레오 로코는 세간에 알려져 있는 '카테나치오의 창시자'란 타이틀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이탈리아 축구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 인도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로코의 엄하면서도 수용적인 특색이 과거의 이탈리아를 현대의 이탈리아로 인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트발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트발 잡담] 아시안컵 역대 최우수 선수들 (102) | 2024.01.14 |
---|---|
[부트발 잡담] 궤적 속 유체역학 (무회전과 감아차기의 원리) (67) | 2023.11.26 |
[부트발 잡담] 이탈리아의 위대한 감독 4인 - 비토리오 포초 (75) | 2023.11.12 |
[부트발 잡담] 이레귤러 - 철학을 적용하기 위한 타협 장치 (61) | 2023.11.06 |
[부트발 잡담]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처진 공격수 (딥라잉 포워드) TOP 5 (62) | 2023.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