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네임: 아마리우두 타바레스 다 시우베이라
포지션: 포워드
국적: 브라질
출생일: 1939년 7월 29일
클럽 경력:
1956 - 1958 고이카타즈
1958 플라멩구
1958 - 1963 보타포구
1963 - 1967 AC 밀란
1967 - 1971 피오렌티나
1971 - 1972 로마
1973 - 1974 바스쿠 다 가마
통산 경기: 명확한 자료 없음(브라질 국가대표 24경기)
1939년 7월 2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캄푸스 도스 고이타카제스에서 아마리우두가 태어난다. 1956년에 아마리우두는 지역 구단인 고이타카즈에 입단하며 프로 축구선수가 되었고, 이후 플라멩구에 입단해 한 시즌을 활약한 뒤에 보타포구로 이적한다.
마네 가린샤, 마리우 자갈루, 디디, 니우통 산투스 등의 브라질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팀을 이룬 아마리우두는 4시즌 동안 136득점과 리우 상파울루 토너먼트 득점왕 타이틀에 빛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구단에게 1962 리우우 상파울루 토너먼트, 1962 주간 컵 챔피언스 클럽, 캄페오나토 카리오카 2연패(1961,1962), 1963 트루누아 드 파리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런 좋은 활약을 통해 1962 칠레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된 아마리우두는 16강 조별리그 2라운드 후에 부상당한 펠레의 대체자로 대회내내 활약하게 되는데, 아마리우두는 조별리그에서 당시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저승사자 군단 레알마드리드 선수진이 다수 포함되어있는 스페인을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막판 역전승을 이끌었으며 8강에선 보비 무어의 잉글랜드를 상대로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역전승에 기여했다.
해당대회 결승전에선 브라질이 16강 조별리그에서 무승부를 거두었던 상대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데, 아마리우두는 요세프 마소푸스트가 이끄는 체코를 상대로 선제득점과 어시스트를 터뜨리며 브라질의 우승을 견인했다. 당시 나이가 23도 안되었던 아마리우두는 월드컵 3득점을 통해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963년 이적을 마음먹게 된 아마리우두는 에버턴으로의 £200,000의 제의를 받았으나, 풋볼리그의 외국인 선수 관련 규정으로 인해 이적에 실패했고, 결국 눈을 돌려 이탈리아의 AC밀란을 선택하게 된다. 아마리우두는 밀란에서의 첫 시즌에 31경기 14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4위를 기록했고, 팀은 세리에 A 3위에 위치했다. 다음 시즌에는 15득점으로 득점 3위를 기록하며 팀의 세리에 A 준우승에 기여하지만 이후 기량하락으로 인해 두 시즌동안 AC밀란에서 모든 대회 62경기 8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 타이틀 근처도 못 갔고, 팀 성적 또한 세리에 A 중위권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1966-67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선 결승골을 터뜨리며 구단 역사상 첫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선물했다.
1972년, 벌써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아마리우두는 10년가량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했고 2시즌동안 활약하며 경력을 마친다.
아마리우두는 170조차 되지 않는 작은 체구를 지닌 공격수였지만, 섬세하고 창의적인 기술력을 지닌 포워드였다. 퍼스트터치로 볼을 높게 띄워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난 후에 다른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플레이가 일품이었으며, 명백한 득점 상황에서도 동료에게 양보하는 등 매우 이타적인 성향을 지닌 플레이였다. 또한 공격수임에도 세리에 통산 레드카드를 9장이나 받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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