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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 에두아르트 아나톨리예비치 스트렐초프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
국적: 소련
출생일: 1937년 7월 21일
클럽 경력:
1954 - 1958 토르페도 모스크바
1965 - 1970 토르페도 모스크바
통산 경기: 354경기 (소련 국가대표 99경기)
1. 무책임한 아버지, 궁핍했던 삶
1937년 7월 21일, 소련의 페로보에서 에두아르두 스트렐초프가 태어난다.
스트렐초프에겐 프레이저 공장에서 목재를 가공하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 유치원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있었지만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매우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다.
스트렐초프가 태어난 지 2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아버지는 소련육군에 징집됨으로 인해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1942년에 아버지가 휴가를 나오면서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인간의 기억이 2.5살 정도에서 시작되는 것을 생각하면 스트렐초프 입장에서 사실상 초면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전쟁 중에 만난 여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고 몇 달 뒤엔 스트렐초프와 가정을 완전히 버리고 불륜 상대와 함께 새 가정을 꾸리기 위해 떠나버린다. 스트렐초프는 시간이 흘러 17살에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기에 스트렐초프의 삶에서 아버지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심근경색과 천식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가 떠난 가정을 홀로 부양해야 했기에 스트렐초프와 가족은 매우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2. 토르페도 모스크바와의 만남
신생아기 때부터 발로 공을 차고 놀던 스트렐초프는 시간이 흘러 7년제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하던 프레이저 공장의 수리공일을 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여전했다.
축구에 재능이 있던 스트렐초프는 13살의 나이에 막내로 프레이저 공장 축구팀에 입단했고 1953년엔 토르페도 모스크바와 친선 경기를 치르었는데, 토르페도의 코치였던 빅토르 프로보르노프와 바실리 마슬로프의 눈에 들어 토르페도 모스크바에 입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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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렐초프 1군 첫 시즌인 1954시즌에 토르페도는 소련 챔피언십에서 9위를 기록했다. 전 시즌에 3위를 기록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매우 아쉬운 성적이었고, 그 중심에는 24경기에 출전에 4득점만을 기록한 스트렐초프의 부진이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적응에 성공한 모습을 보인 스트렐초프는 1955시즌에 22경기 15득점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이 되었으며, 팀을 4위로 이끌며 자신의 재능을 증명한다.
3.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국가대표
토르페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던 스트렐초프는 1955년 6월에 소련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었는데, 스웨덴을 상대로 전반전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었고 그다음 경기인 인도전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소련 축구역사상 가장 큰 점수차 승리인 11: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푸슈카시 페렌츠의 헝가리와 레몽 코파의 프랑스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으며, 프랑스전에서는 득점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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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시즌엔 소련 챔피언십에서 22경기에서 12득점에 성공했는데, 국가대표에선 프리츠 발터의 서독을 상대로 선제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으나, 작년에 무승부를 기록했던 헝가리와 프랑스에게 1점 차로 패하는 아쉬움 또한 있었다.
이후 멜버른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소련은 호주와 2번의 비공식 경기를 치렀는데, 각각 15:1, 16:2로 소련이 호주를 완전격파해냈다. 스트렐초프는 두 번째 경기 후반전에 교체 출전해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4. 금메달없는 금메달의 영웅
1956 멜버른 올림픽은 16개의 국가 중 6 국가(폴란드 포함. 폴란드의 진출권은 영국이 가져가게 된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기권을 했는데, 기권한 국가들 중엔 헝가리 혁명에 대한 소련군의 난폭한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기권한 헝가리도 있었다. (헝가리는 월드컵에서 1954 월드컵에서 상대했던 국가이자 아시아 예선에서 코인토스로 탈락한 대한민국에게 진출권을 양도하려 했으나, 대한민국이 이를 거부했다.)
16강 전에서 독일과 맞붙게 된 소련은 전반 26분에 아나톨리 이사예프의 득점으로 앞서 나갔고, 86분에 스트렐초프가 쐐기를 박는 득점을 터뜨렸다. 독일의 에른스트-귄터 하빅이 89분에 득점을 해냈으나, 스트렐초프의 쐐기 득점이 결승골로 작용하며 소련은 승리를 거두었다.
8강전 상대는 인도네시아였는데, 0:0으로 승부가 나지 않자 재경기를 치렀고 결과는 소련의 4:0 대승이었다.
인도네시아전에서 득점을 해내지 못한 스트렐초프였으나, 준결승에서 국가의 영웅이 된다. 준결승 상대 마놀 마놀로프의 불가리아에게 연장전에 1점 차로 뒤지고 있으면서도 니콜라이 티시첸코와 발렌틴 이바노프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112분에 스트렐초프가 득점을 터뜨리며 승부의 균형추를 맞췄고 이 득점에 힘입어 4분 뒤에 보리스 타투신에게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소련의 극적인 역전 결승행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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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무대 소련의 상대는 유고슬라비아. 유고는 참가 국가의 기권으로 인해 2경기만을 치렀으며 심지어 8강, 4강에서 미국과 인도를 상대로 각각 9:1, 4:1 대승을 거두며 올라왔으나 소련은 유고보다 2배 많은 경기를 소화했으며 경기 막판까지 긴장끈을 놓을 수 없던 경기가 많았다.
준결승에서의 눈부신 활약에도 스트렐초프는 결승전을 뛰지 못하는데 당시 소련의 감독이었던 가브릴 카찰린이 니키타 시몬얀을 스트렐초프의 자리에 기용했기 때문이었다. 48분에 터진 아나톨리 일린의 득점으로 소련은 올림픽을 우승했으나, 당시 올림픽은 결승전에 출전한 11명의 메달만을 만들어냈기에 정작 이 대회의 진정한 영웅 중 하나인 스트렐초프의 몫은 없었다.
스트렐초프를 밀어내고 결승전에 출전한 시몬얀은 스트렐초프보다 11살이 더 많은 베테랑 선배였음에도 대회에서의 스트렐초프의 공헌도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메달을 양도하려 했지만, 스트렐초프는 자신이 11살 더 어리고, 메달과 트로피를 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며 이를 사양했다. 이해에 스트렐초프는 초대 발로도르 13위에 오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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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에서 강간범으로
1957년엔 클럽에선 토르페도를 소련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이끌고 소련컵 8강에서 혼자 5득점을 퍼붓는 활약을 펼쳤으며 국가대표에 선 월드컵 진출권을 두고 겨룬 폴란드와의 지역예선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으며 피치밖으로 옮겨졌으나, 부상당한 다리로 경기에 복귀하며 선제골을 터뜨리고 소련의 월드컵 진출을 이끄며 발롱도르 7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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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스트렐초프였지만 테디 보이 헤어 스타일과 술과 여자를 끼고 살던 스타였기에 소련은 스트렐초프의 행동들을 주시하게 되었고 결국 스트렐초프는 정치적인 이유로 강간 누명을 쓰게 되어 12년을 굴라크에서 복역할 것을 명 받았다. 소련은 스트렐초프가 영웅이 아니라며 선전했고, 스트렐초프는 아내인 알라 니콜라에브나 데멘코와 이혼하게 되었으며 축구계에서도 제명된다.
불행 중 다행인지 툴라 식민지의 결정으로 스트렐초프는 굴라크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5년 만을 견디고 석방된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였던 스트렐초프는 전처인 알라와 재결합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새로운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비록 프로복귀는 막혀있었지만 ZiL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대학교에서 자동차 공업을 공부해 공장의 아마추어 축구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강간 혐의가 있었음에도 스트렐초프를 향한 팬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특히 공장 선수권 대회에서 ZiL이 고르키로 원정을 떠났을 때, 상부에서 스트렐초프를 출전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피치 위에 스트렐초프가 없는 것을 본 팬들은 전반전부터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해 경기장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며 협박까지 하는 등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스트렐초프는 후반전에 투입되며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결국 ZiL의 해당 대회 우승을 이끌게 되었다.
6. 변치않는 사랑
공장에서의 노동과 아마추어 축구를 병행하는 빡빡한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스트렐초프는 토르페도의 모든 경기를 관중이란 포지션에서도 시즌 풀타임을 뛰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토르페도에 대한 사랑과 프로 무대로의 재기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스트렐초프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1964년 10월에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니키타 흐루쇼프에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로 교체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브레즈네프에게 스트렐초프의 프로 복귀 허가를 요청해 왔고 그중에는 소비에트 최고 회원이나 사회주의 노력 영웅도 있었으며 수천 명의 서명이 적힌 편지를 보낸 이들 또한 있었다. 브레즈네프는 이들을 통해 스트렐초프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고, 터무니없는 경우라며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인다.
1965년에 토르페도에 복귀하게 된 스트렐초프는 수많은 팬들에게 환영받았고 석방 이후의 노력들이 보답받듯 녹슬지 않은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였고 토르페도를 꿈에 그리던 소련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고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 2위에 선정된다.
1966년엔 유럽 대항전 데뷔를 했으며, 소련컵에서 5경기 5 득점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디나모 키예프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잉글랜드 월드컵 종료 후엔 다시 소련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처인 알라와 만나게 되어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렐초프에겐 이미 새 가정이 있었기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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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엔 국가대표 친선전에서 프랑스,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칠레 등의 팀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68 시즌엔 소련 챔피언십과 소련 컵에서 33경기 21 득점, 3경기 3 득점을 기록하며 토르페도를 각대회 준우승과 우승으로 이끌었고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에 다시 한번 선정된다.
이후 스트렐초프는 토르페도에서 두 시즌을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은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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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힐패스의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당시 소련의 사람들은 발꿈치를 활용한 패스를 '스트렐초프 패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신의 선수생활을 전부 바친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홈구장의 이름 또한 해당 선수에게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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