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타 데 호이

[풋볼리스타 데 호이] 아틀레틱 클루브의 마지막 스트라이커, 아리츠 아두리스

파울리노 하나 2023. 2. 12. 04:34


풀네임: 아리츠 아두리스 수벨디아

포지션: 센터 포워드
국적: 스페인
출생일: 1965년 2월 5일

클럽 경력:
1999 - 2000 아우레라
2000 - 2002 빌바오 애슬레틱
2002년 - 2004년 아틀레틱 빌바오
2003 - 2004 부르고스 (임대)
2004 - 2005 바야돌리드
2006 - 2008 아틀레틱 빌바오
2008 - 2010 마요르카
2010 - 2012 발렌시아
2012 - 2020 아틀레틱 빌바오

통산 경기: 약 806경기 (스페인 국가대표 13경기, 바스크 국가대표 13경기)



1. 하부리그를 맴돌다


1981년 2월 11일,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에서 아리츠 아두리스가 태어난다. 아두리스의 부모는 스키 강사였고 여러 스포츠를 즐겨했는데, 그 영향으로 아두리스도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 등산, 카누, 서빙, 스노보드, 스키 등의 운동을 즐겨했다. 특히 부모님의 유전자 때문인지 스키에는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어서 9살에 주니어 전국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두리스의 관심은 축구에 향해있었고 진로를 축구로 전향하게 된다.

1994년, 스포르팅 데 에레라에 입단하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13살의 아두리스는 얼마 안 가 아틀레틱 클루브의 유스 산하 구단 중 하나였던 안티구오코에 입단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알론소 형제, 미켈 아르테타 그리고 또 다른 아틀레틱의 레전드가 될 안도니 이라올라와 함께 축구를 하며 성장했다.

1999년엔 코파 델 레이 후베닐 결승에 진출해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4 대 2로 꺾었지만 2차전에서 0 대 3으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한다. 하지만 이 시즌 아두리스는 리그에서 33골을 폭격해 득점왕을 수상 받아 유망주로 세상에 알려진다.
당시 나이가 18이었던 아두리스는 대학공부를 위해 다음 시즌에 안티구오코와 마찬가지로 아틀레틱과 협의된 구단인 CD 아우레라로 이적하며 시니어 경력을 시작했고 2000-01 시즌에 아틀레틱 클루브의 리저브 팀인 빌바오 아틀레틱에 합류하게 된다.

두 시즌 뒤의 2002-03 시즌 9월 14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군에 데뷔하게 되었지만 당시 1군 감독인 에르네스토 발베르데의 명령으로 빌바오 아틀레틱의 승격을 돕기 위해 대부분의 경기는 빌바오 아틀레틱에서 치렀다.

2003-04 시즌엔 3부 리그의 부르고스 CF로 임대되어 리그 36경기 16 득점이란 활약을 보였고

2004-05 시즌엔 당시 2부 리그 소고이었던 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한다. 레알 바야돌리드에서도 두 시즌통산 52경기 22 득점이란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2. 뛰어난 소방수


아두리스의 이러한 활약은 자신의 친정구단이자 강등을 면하기 위해 공격수를 찾고 있던 아틀레틱 클럽에게 전해졌고 겨울에 3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며 다시 아두리스를 영입한다. 아두리스는 2005-06 시즌 잔여 경기동안 활약하며 리그 15경기 6 득점으로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아틀레틱의 강등을 막아냈다.

2006-07 시즌엔 부상들로 인해 소화하지 못한 경기가 조금 있었지만 리그 34경기 9 득점으로 다시 한번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된다. 2007-08 시즌엔 유망주였던 요렌테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아두리스는 선발이 아닌 벤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리그 33경기 7 득점이란 여전히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두리스의 활약에도 당시 아틀레틱 클루브의 회장인 페르난도 마쿠아는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마요르카에게서 이적제의가 들어오자 아두리스를 팔아버린다. 구단의 선택에 동료들과 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아두리스는 반강제로 마요르카로 이적한다.

마요르카는 2007-08 시즌 라 리가의 득점왕이자 팀의 에이스였던 다니엘 귀사의 이적으로 인한 빈자리를 메꿔내기 위해 500만 유로를 지불해 아두리스를 4년 계약으로 영입한 것이었다.

아두리스와 함께 스페인의 대기만성형 공격수로 유명한 '다니엘 귀사'

원치 않았던 이적이었지만 아두리스의 활약은 이어지는데, 첫 시즌인 2008-09 시즌엔 리그 35경기 11 득점으로 팀 내 최다득점자의 활약을 보였다. 아무래도 전 시즌 33경기 27 득점을 기록한 귀사의 활약에 비하면 아쉬웠지만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9-10 시즌엔 리그 34경기 12 득점으로 또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마요르카를 챔피언스리그 진출 직전까지 이끌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세비야에게 극적으로 역전당하며 UEFA 컵에 진출권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아두리스의 뛰어난 활약에도 또다시 원치 않는 이별이 찾아오게 된다. 마요르카의 재정상태가 아두리스를 팔아서 이적료를 발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페네르바체에서 온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되었고 4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우나이 에메리의 발렌시아로 이적하게 된다. 계약기간은 3년이었다.

발렌시아에서의 첫 시즌인 2010-11 시즌엔 로베르토 솔다도와 파트너를 맺으며 통산 39경기 14 득점을 기록했고 2011-12 시즌엔 솔다도와 조나스 올리베이라의 뛰어난 폼으로 인해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45경기 9 득점이란 준수한 스탯과 더불어 뛰어난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며 발렌시아를 리그 3위로 이끌었다.

2010년 10월 4일에 비센테 델 보스케가 이끄는 스페인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10월 9일에 치러진 유로 2012 예선 리투아니아전에서 아틀레틱 클루브에서 자신을 밀어낸 페르난도 요렌테와 교체되어 국가대표 데뷔를 하게 된다.


3. 大器晩成? 폭격기가 된 소방수


이젠 나이 30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츠 아두리스에게 또다시 아틀레틱 클루브에게서 제의가 온다. 발렌시아에서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던 아두리스는 이를 받아들이며 250만 유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아틀레틱 클루브로 이적한다.

세 번째 아틀레틱 클루브에서의 첫 시즌인 2012-13 시즌에 5년 전, 자신을 밀어내고 아틀레틱 클루브의 득점을 책임졌던 페르난도 요렌테를 밀어내며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다음 시즌 팀을 떠날 것을 선언한 페르난도 요렌테보단 아두리스에게 기회를 주려한 것이었다. 비엘사가 준 기회에 보답하듯 시즌 통산 44경기 18 득점의 활약을 보였고 리그에선 뛰어난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며 14 득점을 기록했고 이러한 활약으로 구단은 강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13-14 시즌, 마르셀로 비엘사가 아틀레틱 클루브를 떠나고 에르네스토 발베르데가 또 한 번 아틀레틱의 지휘봉을 잡는다. 이미 '첫 번째 아틀레틱 클루브'에서 발베르데와 한솥밥을 먹었던 아두리스는 리그 36경기에서 16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4위를 이끌었고 사라 트로피를 받을 수 있었지만, 디에고 코스타가 스페인 국적으로 귀화하게 되며 사라상을 놓치게 됐다.

2014-15 시즌엔 리그 31경기 18 득점을 해내며 사라상을 수상 받았고 팀을 코파 델 레이 결승으로 이끈다.

2015-16 시즌은 아리츠 아두리스 커리어의 정점이자 유일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시즌이었는데, 시작부터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아틀레틱의 4 대 0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에선 리오넬 메시의 선제득점이 있었지만 아두리스가 동점을 만들어내면서 합산 스코어 5-1로 아틀레틱과 자신에게 트로피를 선물한다. 유로파 리그 8강 2차전에서 부상이 발생하며 팀은 승부차기 끝에 세비야에 패하지만(아틀레틱을 이긴 세비야는 이 시즌 유로파 리그를 우승한다.) 아두리스는 유로파리그 득점왕이었다.

리그에선 20 득점을 해내며 사라상을 수상 받았으며 시즌 통산 스탯은 55경기 36 득점 10 도움이란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2016-17 시즌에도 통산 42경기 24 득점이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고 유로파 리그 조별예선 4차전에서 헹크를 상대로 5 득점을 해내며 유로파 리그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2017-18 시즌, 당시 36이었던 아두리스였고 서서히 기량하락이 드러나는 건지 리그 33경기 9 득점으로 지난 시즌들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겼고 팀은 리그 16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대신 예선 포함 유로파 리그 14경기에서 11 득점이란 기염을 토해내며 한번 더 유로파 리그 득점왕을 수상 받았지만 팀은 16강까지였다.

2018-19 시즌은 아두리스의 선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기량하락과 세비야의 이브라힘 아마두와의 충돌로 인한 시즌 중반 약 3개월짜리 무릎부상의 여파로 리그 20경기 2골이란 초라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시즌 종료 4일 후에 구단이 2019-20 종료 시까지의 계약 연장을 발표하며 38의 나이로 라리가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2019-20 시즌 개막을 앞두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시즌 종료 시에 은퇴할 것을 선언했다. 리그 개막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하게 된 아틀레틱 클루브는 무득점 무실점으로 경기를 끌고 갔는데, 89분에 교체되어 들어온 아두리스가 투입되자마자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극장 승리를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이 득점이 아두리스 커리어 마지막 득점이 되었다.

3월 중순에 코로나-19 판데믹이 일어났고 이것이 고관절 문제와 겹쳐 결국 예정보다 빠른 5월 20일에 은퇴하게 된다.

무관중으로 치른 은퇴식은 이 공격수가 이룬 업적을 생각해 볼 때 너무나도 아쉬운 마지막이었다.


머리를 굉장히 잘 활용하던 선수로 그 덕에 선수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한정적인 영입방침을 지니고 있는 아틀레틱 클루브이지만 여러 유망한 선수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의 이케르 무니아인, 이냐키 윌리엄스 현재의 니코 윌리엄스, 다니 비비안 등.

하지만 아리츠 아두리스의 이후로 '스트라이커'는 등장하질 않고 있다.

아두리스는 굉장히 꾸준한 선수였다. 물론 많은 이들이 아틀레틱 클루브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을 더 기억하겠지만

커리어 초중반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여러 팀을 오가는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주전자리를 따내는 모습이야말로 아두리스의 진가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텔모 사라의 혼을 잇는, 아틀레틱 클루브 마지막 스트라이커의 생일을 축하하며 글을 마치겠다.

¡Feliz cumpleaños!